▲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멕시코 아래, 온두라스 더 아래 카리브 해안엔 미스키토 인디언이 살았다. 미스키토 부족은 4번째 항해에 나선 콜럼버스에게 약탈당하는 등 16세기부터 유럽인들과 꾸준히 접촉했다. 유럽인이 끌고 온 아프리카 노예들과 결혼하면서 문화 교류도 일어났다.

미국은 1926년 독립을 향해 혁명을 일으킨 니카라과에 해병대 5천명을 파병하고 7년 동안 주둔시켰다. 미군 다음엔 장장 46년에 걸친 친미 소모사 독재정권이 들어섰다. 소모사에 맞선 산디니스타 반군이 1979년 집권에 성공했다.

산디니스타 정권은 미스키토 부족에게 스페인어 사용을 강요하는 등 동화정책과 함께 강제 이주까지 시켰다. 미스키토는 이에 맞서 봉기했다. 오랜 게릴라전 끝에 집권해 기반이 취약했던 산디니스타 정부는 1985년 미스키토에게 자치권을 인정하고 정전에 합의했다. 당시 니카라과 대통령이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이끌었던 오르테가였다.

미스키토는 아즈텍과 마야, 파라과이의 과라니 문명과 함께 중앙아메리카 대표 부족이었다. 인디언 원주민에게 친미 정권이냐, 반미 정권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니카라과에서 친미 소모사 정권이 막바지 발악하던 1979년 말 미국 ‘타임스’지는 세계 5대 독재자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니카라과 소모사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도 등장했다. 기사 말미에 기자가 미국 카터 대통령에게 “이들 독재정권을 미국 정부가 후원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카터는 “우리한테만 개××들이 있는 건 아니다. 소련도 개××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답했다. 그랬던 카터는 퇴임 뒤엔 북한과 중동을 오가며 평화 중재자로 이름을 날렸다.

1984년 대선에서 처음 당선된 니카라과 대통령 오르테가는 80년대 내내 미 CIA가 지원하는 반군과 대치했지만, 1990년과 1996년, 2001년 내리 세 번의 대선에서 패했다. 오르테가는 2006년 38.1%를 득표해 힘겹게 재선에 성공해 지금까지 내리 세 번을 연임하고 있다. 합계 집권 기간이 21년에 달해 이미 박정희의 18년을 능가한 오르테가는 올 연말 다시 대선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오르테가는 2014년 헌법을 바꿔 재임 횟수 제한을 없애고, 2016년엔 아내 무리요를 부통령에 지명했다. 2018년엔 반정부 시위를 진압해 320명 이상 숨졌다. 지난해 12월에는 반역자의 대선 출마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지금까지 유력 대선 주자 7명을 체포했다. 심지어 오르테가와 함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이끌었던 옛 동료 마리아 텔레즈도 체포했다. 박정희·전두환 같은 독재자의 행동을 그대로 닮았다.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정권은 없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었던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은 지난달 140여 명의 라틴아메리카 좌파 지식인과 함께 오르테가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권위주의 대통령으로 변해 부패에 물들고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중에게 권력을 쥐여주겠다고 공언했던 무장 게릴라는 이렇게 추하게 늙어가고 있다. 집권을 이어가는 니카라과의 오르테가 집권세력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처럼 이미 좌파의 가치를 잃은 독재자일 뿐이다. 이들은 반대자들을 향해 한결같이 ‘미제의 간첩’이라고 부르짖지만 이제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 많은 자원을 갖고도 정치가 타락하는 사이, 남미 민중의 삶은 한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남미엔 좌·우파가 없다. 독재자와 민주주의자가 있을 뿐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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