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올해부터 갑자기 대학 시설팀 팀장이 우리한테 강의실 내 시스템 에어컨을 분해해서 싹 닦으라고 하지를 않나, 위험한 외벽 청소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한두 시간에 되는 일도 아니고 100개 넘는 강의실 에어컨을 닦으려면 우리가 하던 청소일은 어쩌라고요.”

서울의 어느 사립대학 청소 노동자들이 상담을 요청하며 하소연했다. 기존 업무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인 만큼 거부 의사를 표시하고, 용역업체 현장 관리자에게 알려 원청과 협의하도록 요청하라고 조언했다.

“(용역업체 관리자에게) 불만을 이야기했더니, ‘일 그만하고 싶냐’며 대학이 시키는 대로 해주라고 저희만 다그치네요. 대학 시설팀장과 직접 이야기하라며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해요.”

이튿날 수화기 너머로 60대의 여성 노동자는 불만을 쏟아냈다. 용역업체 소속으로 건물 시설관리와 청소를 담당하는 용역 노동자들은 상전이 둘이다. 용역업체 현장 관리자도 상급자요, 용역업체에 용역서비스를 의뢰한 원청 관리자의 눈치도 봐야 한다.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노동상담을 하다 보면 노동자들을 채용한 용역업체 현장 관리자는 원청 관리자의 말을 대신 전하는 메신저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청 관리자가 용역회사 현장 관리자보다 더 밀접하게 용역 노동자들을 지휘 감독한다. 용역회사가 수행하기로 계약한 업무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업무를 직접 용역 노동자에게 지시하는 것도 다반사다.

이처럼 용역업체 노동자들의 불만은 갑을 관계를 활용한 원청회사의 불합리한 업무지시와 그로 인해 강화되는 노동강도에 집중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1년 단위로 갱신되는 용역계약 형태로 인해 근속연수가 승급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매년 결정되는 최저임금이 이들의 임금 수준이다.

기업이 핵심 인력을 제외하고 건물 청소나 시설관리, 구내식당 운영을 외주화하여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노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인력운영 방침에서 시작되어 우리 사회에 일반화됐다. 그러나 용역 혹은 도급계약이란 민법상 일이나 서비스의 완성을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는 계약이다. 원청이 의뢰한 일(건물 청소 등의 시설관리)을 자기조직과 전문성을 갖춘 용역업체가 알아서 수행하고 원청은 일일이 용역업체의 업무수행에 간섭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청 업체 관리자들은 자기 부서 하급자 다루듯 긴밀하게 용역 노동자들을 지휘 통제한다. 카카오톡 휴대전화 메신저에 업무 관련 단체대화방을 만들어 수시로 업무를 지시하고 원청의 인사 정책에 따라 정신 교육을 하는가 하면, 용역업체와 용역 계약상 약정하지도 않은 부수적 업무를 상시로 용역 노동자들에게 강요한다. 명백하게 용역계약 위반이며, 계약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직장내 갑질’이다. 일상적이고 장기화한 원청 관리자의 용역 노동자에 대한 업무상 지휘·감독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으로 불법파견의 요소도 다분하다.

근본적으로는 민간부문에도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사용의 제한이 절실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인력 운영의 탄력성을 부여한다는 미명하에 ‘사람장사’를 용인한 결과는 참혹하다. 소수의 잘나가는 대기업 정규직 1등 노동자와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에 고통받는 기간제 2등 노동자, 그리고 더럽고 위험한 업무를 도맡아 하면서 다치고 죽어가는 3등 파견·도급 노동자로 나뉘어 서로가 반목하고 갈등한다.

단기적으로는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의 범위를 파견·용역·도급 계약관계에서 원청 사용자까지 확대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이 최대임금이 되는 현실에서 저임금으로 ‘사람장사’가 가능하게 된 임금 구조를 바꿔야 한다. 공공부문에서는 특정 업무를 외주화하는 경우 적용하는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에 따라 생활임금이라는 형태로 최저임금에 더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제도를 민간 청소용역 및 시설관리, 경비노동에 적용 가능할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원청 관리자들도 다 알 것이다. 용역 업체 노동자들의 수고로움 없이 회사가 돌아갈 수 없음을 말이다. 청소원, 구내식당 조리 노동자, 경비 노동자와 시설관리 담당자, 심지어 안전과 직결되는 소방인력까지. 알고 보면 해당 회사와 무관한 외부 업체의 노동자들이 회사를 깨끗하게 하고, 직원들 밥을 지어 먹이며, 안전을 책임진다. 용역업체 노동자를 일일이 관리하며 지휘 감독하면서 사용자 책임을 지긴 싫은 원청기업의 ‘도둑놈 심보’는 반드시 제도로서 제어되어야 한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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