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콜센터 상담사들은 대다수가 최저임금을 받는다, 국가자격증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요양보호사도 최저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일하는 곳이 공공기관이든, 민간업체이든,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최저임금이 기본값인 것처럼 고정되어 있다. 1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만 임금인상이 이루어질 뿐이다. 누가 이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이어도 된다고 규정했나?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 절하,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이라는 사회적 편견, 주로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고용구조가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이 직무는 최저임금이라는 ‘상식’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이 노동은 숙련이 의미가 없는 단순노동이라서 그런 것일까? 요양보호사 업무만 보더라도 노인돌봄 과정에서 심리상담, 운동, 응급처치 등 전문적이고 숙련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오래 일한 노동자들은 경험을 쌓거나 개인적으로 공부를 해가며 이런 역량을 보유한다. 경험 많은 요양보호사를 만나는 것은 노인에게는 운이다. 콜센터 상담사들도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하고, 상담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복합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숙련은 모두 개인의 몫이고 숙련을 형성하기 위한 체계도 없고 숙련에 합당한 보상체계도 없다.

직무급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직무급제는 ‘하는 일의 어려움과 역할을 따져서 임금을 책정하는 임금체계’라고 한다. 연공급제는 정규직의 기득권을 지키는 임금체계이며, 비정규직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직무급제가 대안이라고 이야기한다. 직무급제가 현실화하지 않는 것은 대기업 노조들의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성토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정말 연공급제는 악이고 직무급제는 선인 것일까? 직무급제가 차별을 줄이는 임금체계라면 왜 비정규직은 직무급제에 힘을 보태지 않는 것일까? 요양보호사와 콜센터 상담사들의 직무를 ‘단순업무’라고 단순하게 규정하는 그 틀에서 벗어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8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청소·경비·시설관리·조리·사무보조 5개 직종을 표준직무로 선정해서 표준임금체계를 마련한 바 있다. 표준임금체계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었고, 15년을 일해서 직급이 최고로 올라가도 임금이 최저임금의 1.4배밖에 되지 않는 임금을 받게 되어 있었다. 여러 비판이 일자 정부는 표준임금체계를 폐기했지만, 공공기관들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무기계약직이 된 노동자들에게 이와 유사한 직무급을 도입했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았고 정규직과의 차별도 줄어들지 않았다. 정부가 말한 ‘직무급제’는 이런 것이었다.

직무급제를 하려면 직무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있어야 하고, 그 직무가치에 맞으면서도 충분히 생활 가능한 임금수준이 보장되어야한다. 숙련 형성과 보상체계가 있어야 하고, 직무 간 임금격차도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또한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임금체계로 정착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직무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폄훼가 없어야 하고, 모든 직무와 그 직무의 숙련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최저 기준이 지금의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 가능한 임금이어야 한다. 대기업 중심의 수탈 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산별교섭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기업 규모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없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편견으로 많은 노동을 폄훼하고, 그 노동을 하는 이들을 차별한다. 어떤 노동은 직무에 대한 이해도, 숙련을 위한 체계도 검토된 적이 없다. 산별교섭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다운 생활이 불가능한 현재의 최저임금마저도 너무 높다는 아우성만 들린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한국사회에서 직무급제는 차별과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임금체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위해 싸우면 ‘시험 봐서 좋은 직무로 가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비난하는 연공급제는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을 제외하고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 많은 노동자들은 임금체계랄 것도 없이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수당이 조금 더해진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 잔업과 특근을 감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점에서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정부는 직무급제를 강요하지 말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또한 지금의 차별적 처우를 개선하고, 최저임금이 적어도 생활 가능한 임금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야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도 진정성 있게 시작될 수 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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