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 의견 수렴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수렴 종료일을 보름여 앞두고 노동계와 재계·정부의 발길이 분주하다. 노사단체가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을 극대화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할 의견을 정리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내년에 차질 없이 법을 시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업주 의무, 직업병 범위 협소해 실효성 낮을 것”

한국노총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수렴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위반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는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시행령 입법예고안에는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내용과 직업성 질병의 범위, 안전보건교육 절차·내용과 중대재해 발생 사실 공표 방법·기준 등 법을 실제 작동시키는 핵심적 내용이 담겨 있다.

모법은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산업재해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입법예고안은 질병 범위를 급성중독에 준하는 24개 질병으로 한정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의무 수준은 안전보건공단이 인증하는 현 안전보건경영인증시스템과 유사한 수준으로 설정해 놨다.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차장은 발제에서 “직업성 질병 규모와 사업주에 부과한 안전보건관리조치 의무를 협소하게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직업성 질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뇌심혈관계 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 등 만성질환, 직업성 암 등이 제외돼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과)는 “위험성 평가 등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조치를 통해 중대재해를 예방하는데 지금 관심은 경영진 처벌에만 집중돼 있고, 이럴 경우 자본이 있는 대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해갈 수 있겠지만 그 이하 기업의 중대재해를 낮추는 효과로 이어지긴 어렵다”며 “(입법예고안은 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가 두루뭉술해) 준법의지가 있는 기업도 법만 보고서는 어떻게 대비하고 예방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 “감독관 수사능력 키우는 데 집중”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성중독을 처벌대상에 집어넣어도 경영책임자의 고의와 위법성, 인과관계가 인정돼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며 “직업병 범위 문제를 두고 다투는 것이 지금 실효성이 있는 주제일까 하는 고민이 든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처벌되지 않더라도 직업병 범위를 넓혀 사업주에게 예방조치를 하도록 하자는 의견, 처벌 안 되는 내용을 넣어 봐야 사회적 갈등만 양산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이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업주 의무를 법안에 나열한 입법 형태에 대한 우려도 표현했다. 전 교수는 “사업장별 위험요인이 다르고 재정도 다른 상태에서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일일이 나열하는 입법을 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패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법령의 취지를 살리려면 불충분한 이행은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행정재제·형사처벌 할 수 있는 행정과 수사·재판 논리와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계는 법안에 따라 사업주가 져야 할 의무가 불명확하다고 항변했다. 전승태 한국경총 안전보건팀장은 “노동부가 최근 굴지의 건설사를 상대로 감독한 결과를 보면 하나같이 인력과 예산투입이 부족했다고 지적됐다”며 “어느 정도 노력해야 의무를 이행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전 팀장은 대표이사가 안전보건을 포함한 예산안을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받을 경우 의무를 이행했다고 인정해 주는 등의 보완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정부는 법 시행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강검윤 노동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장은 “기업이 불량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이 법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강 과장은 “법이 함량 미달이라거나 조잡하다는 등의 지적이 있지만 지금 와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현장에서 잘 작동하도록 최대한 준비하는 것이 노동부 역할”이라며 “공포 시기에 맞춰 해설서를 내고, 감독관의 수사역량을 높이기 위해 수사실무서를 만들고 교육을 하는 등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토론회에 나온 의견을 취합해 입법예고안 의견수렴 기간 마감일인 23일 전까지 노동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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