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근로감독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1주일 여름휴가에서 돌아와 힘겹게 책상에 앉아 자회사 전적자들의 파견소송 항소심사건에 관한 항소이유서 등을 작성하느라 한가할 틈이 없던 지난주였다. ‘사무직에 대해서 별도로 노사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물었다고 직접 전화를 받았던 J노무사는 내게 전했다. 얼마 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교섭단위분리신청 재심사건을 진행했던 LG전자 주식회사에 관해서였다. 사무직 노동조합을 대리해서 나는, 기능직 중심의 기존 노동조합은 사무직 노동자를 대표해서 제대로 교섭하기 어렵다며 노동위원회가 교섭단위를 분리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재심신청을 기각하고 말았다. 당시 피신청인 사측은 ‘주니어보드’가 사무직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활동해 왔고 기존 노조가 그 의견을 수렴해서 교섭했다고 주장하고 나왔다. 이에 따라 나는, 어떻게 LG전자에서는 노동자를 대표해 왔다는 것인지 살펴보게 됐는데, 도대체가 알 수가 없었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서 사무직을 대표한다는 것인지, 이와 별개로 사측이 만든 임의적인 단체가 대표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파악되지 않았다. 이렇게 납득이 되지 않아 LG전자에서 노사협의회가 적법하게 구성돼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고, 이에 따라 사무직 노동조합에 근로자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문제삼을 수 있다고 자문했다. 그 뒤 그에 관한 진정사건을 대리해서 2주 전쯤 진정서를 관할 노동사무소에 제출했던 것인데, 그에 따라 담당 근로감독관에게서 연락이 왔던 것이다. 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겠냐고.

2. LG전자에서는 기능직은 기존 노동조합이 위촉해서 근로자위원을 구성해서 사무직과 별도로 기능직의 노사협의회를 운영한다. 사무직은 이전에는 주니어보드, 이제는 사무직을 대표한다는 위원을 구성해 기능직과 별개로 사측 위원들과 협의기구를 조직해 운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어디에서도 근로자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노사협의회는 없다.

법은 기능직과 사무직을 구분해서 노사협의회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지 않다. 한 사업장에서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사업이나 사업장 단위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하나의 사업에 지역을 달리하는 사업장이 있을 경우에는 그 사업장에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4조 1항, 2항). LG전자에서 사무직은 기능직과는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을 달리하는 사업(장)이 아니다. 이는 교섭단위분리신청사건에서 피신청인 사측이 누누이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사무직이 기능직과는 지역을 달리하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것도 아니다. 기능직도 생산공장에서만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사무직도 본사만이 아니라 생산공장에서도 근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법적으로는 기능직과 사무직을 분리해서 노사협의회를 구성, 운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다. 그러니, 당연히 노사협의회를 운영하도록 한 근로자참여법 위반이라고 법적으로 문제삼겠다고 사용자 LG전자를 진정하게 됐던 것이다. LG전자에서 운영한다는 노사협의회는 노사협의회일 수 없다고.

3.‘선관위 구성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하자.’ 매일노동뉴스에서 이런 뉴스를 읽었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으면서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근로자참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8일 밝혔”는데, “개정안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선출하는 경우 부정선출 행위 예방과 감시를 위해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람이 참여하는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현행 근로자참여법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대표자와 그 노동조합이 위촉하는 자로” 근로자위원을 구성하되(6조), 시행령은 근로자 과반수의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사업장 근로자 10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입후보자 중에서 근로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로 근로자위원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3조). 이렇게 법령이 근로자위원의 구성을 규정하고 있으니, 우리의 경우 사용자 맘대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가 있어 사용자가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위원을 구성해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은 사업장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사용자를 위해서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 부합한다. 위와 같이 법령은 마치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노동자들이 자신의 대표로 선출할 수 있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근로자위원을 구성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 노동자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으로 구성돼 운영되는 노사협의회는 여간해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근로자가 선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사용자가 기획해서 근로자위원을 구성해 운영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난다. 바로 이와 같이 우리 노동현실이 엉망진창이니 근로자위원 선출에 관한 선관위에 관한 규정이라도 두자고 위와 같이 개정안을 제안한 것일 것이다. 하도 엉망진창이라서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이 없다면 노동자를 위한 노사협의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어째서 이런 현실이 나타난 것일까. 특별히 규제하지 않으면 ‘사용자 맘대로’인 세상인 것이다.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해 활동한다는 노동조합의 경우에도 내버려 두면 사용자가 지배·개입하는 세상이니 부당노동행위로 규제해서 그 조직, 활동을 보호하고 있다(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81조 참조). 만약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구성과 활동에 관해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처럼 규제할 수가 있다면 사용자 마음대로인 노사협의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법은 노사협의회를 사용자 맘대로 하도록 방치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노동자를 위한 노사협의회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노사협의회는 사용자를 위한 것이라고 노동자들은 여기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도대체 어느 노동자가 노사협의회가 자신을 위해 활동하는 기구라고 여긴다는 것인가. 과반수노조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노사협의회는 사용자를 위해서 활동하는 기구로 알고 있을 뿐이니, 노사협의회를 개선해보자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지경인 것이다.

4. 이렇게 이 나라에서 노사협의회는 엉망진창인데, 어쩌다 이런 제도를 도입한 것일까. 독일 등 노동선진제국에서의 사업장 노동자대표기구와 노사공동결정제도를 참고하고서 장차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며 거창하게 도입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도입된 이 나라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은 사업장 노동자대표기구가 되지 못하고, 노사협의회는 사업장 주요 경영사항에 관한 공동결정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저 별 볼일 없는 사항을 협의하거나 사용자의 결정사항을 수용하는 기구로 기능하고 있으니 노동자를 위해서는 없느니만 못한 기구라고 봐야 한다. 그동안 이 나라에서 노사협의회를 돌아보면, 많은 사업장에서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 실시와 임금 등 근로조건의 삭감에 협의해 줬다. 노사협의회가 없었다면 노동자들이 대표기구를 구성해서 했을 것인데, 그럴 수가 없었다. 노사협의회로 사용자는 노동자쪽과 협의한 것으로 취급이 됐다. 심지어 노동조합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기 위해서 노사협의회가 이용돼 왔다. 오랫동안 삼성 등에서 사용자 자본의 무노조경영은 노사협의회를 통해서 관철할 수가 있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용자 맘대로 할 수 있는 노사협의회이니 노동조합의 조직, 활동을 무력화시킬 사용자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노동조합 같이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구성해 활동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용자 맘대로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무방비하게 방치해 이 나라에서 노사협의회는 사용자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노동자를 사용자 주인의 처분에 복종하기만 하는 노예로 취급하는 짓이다. 노동자를 노예 취급해서는 안 된다. 껍데기뿐인 노사협의기구는 필요치 않다. 더는 노예로 취급하지 않고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주체로 여긴다면, 사업장에서 노동자위원회 등 온전한 노동자대표기구가 설치해야 한다. 그 노동자대표기구가 사용자 경영사항에 관한 공동결정에 참여할 수가 있어야 한다. 오늘 이 나라에서 노사협의회는 노동자를 노예 취급하는 것이라고 고발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