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효수 공공연맹 정책실장

“10여년간 잘 키운 사과나무에 몇 개의 썩은 사과가 있다. 썩은 사과를 따 낼 것인가. 나무를 베어 낼 것인가?”

지난 28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조직개편 정부공청회에서 시민대표 김희준씨가 한 발언이다. 여기에 더해 사과밭 전반에 문제가 있다면, 밭을 엎을 것인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과가 잘못인지, 나무가 잘못인지, 관리의 잘못인지 철저하게 살펴보고 결정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 문제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LH 문제다. 개인의 일탈인지, 조직의 일탈인지, 관리의 문제인지 정확히 진단하지 않고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먼저, LH 조직원만의 개인 일탈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태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투기 문제가 LH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 전반의 문제인지, 현 정권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침묵해 온 악습 같은 문제인지를 진단해야 한다. 정부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보면 LH가 약 20%, 나머지 80%는 지자체장·공무원 및 민간 등이 포함돼 있다. 투기 문제는 오래전 1기 및 2기 신도시 외의 지역에서도 있었다. 이러한 점에 비춰 볼 때 현 사태를 LH 문제만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악습으로 진단해야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LH의 조직적 일탈인지 살펴보자. 사태 이후 대대적 압수수색과 더불어 1천500여명의 수사관이 네 달간 투입됐다. LH 직원 1만명 중 4명이 구속됐지만 아직까지 1명도 정보유출 사실이 입증되지 않고 있다. 조직적 기준을 0.04%로 볼 것인지와 공정·형평적 혁신방법은 정부가 판단해야 한다. 100%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일부 오류를 잡는다며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분리한다면 작동하지 않을 수 있고, 원상 회복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될 것이다. 그 비용은 동의 및 결정한 주체, 즉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이것이 LH 분리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관리의 적정성을 살펴보자. 공공기관의 실제 관리자, 즉 사용자는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특성상 사업 방향과 목표는 정부정책에 의해 결정되며, 기획재정부의 경영평가를 통해 철저히 통제돼 왔다. 일례로 지난 공청회 때 국토교통부는 LH 조직 비대화를 원인으로 제시했다. 과연 그럴까? LH는 통합 후 6천500여명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및 정규직화 정책을 기재부가 경영평가 제도에 반영해 300여개 공공기관은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LH도 이 기간 2천500여명의 대규모 정규직 전환으로 각종 상을 받았다. 정부의 조직 비대화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고, 정책을 잘 수행한 공공기관 전체를 잠재적 비위기관으로 규정한 발언이다. 즉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LH처럼 처방하겠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경영평가를 통해 숫자와 실적 중심으로 공공기관을 통제 및 평가해 왔다. 만약 윤리·청렴과 공공성 강화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의 사태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정부의 공공기관 운영방식과 통제수단인 경영평가 제도는 반드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공청회 때 정부안에 대한 전문가의 우려, 시민대표의 반대 및 전문성 없는 정부의 답변에 국민 우려는 더욱 깊어졌다. 여론도 우려를 표하고 있어 국민은 이미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김형석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결국 공공기관 신뢰회복으로 에둘러 이야기했지만, LH를 분리한다고 국민적 동의를 얻기는 이미 힘들어 보인다. 오히려 공직사회 전반의 문제를 감추고 국민의 눈을 가리는 정부의 행위에 국민의 신뢰를 더 잃을 수 있다. 이해관계가 있는 약 330만명의 경남도민과 140만명의 한국노총 반대는 둘째 치더라도, 각종 학회와 전문가들 속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졸속안을 불안하게 봤던 전문가 집단인 학회들이 연합해 자발적 검토와 비판에 나섰다. 지난 토론회에서는 참석한 학회 모두 정부안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썩은 사과를 따 낼 것인지, 나무를 베어 낼 것인지, 밭을 엎을 것인지를 묻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썩은 사과를 따내고, 운영 및 관리시스템 방식을 바꿀 것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한 그루를 베어 낸다고 사과밭 전체가 개선되지 않듯, LH를 분리한다고 해서 사회 전반의 부동산 투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작은 가게조차 상품을 재배열할 때 지속가능성과 효율성을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의견을 듣는다. 200조원에 달하는 LH 분리는 소수 또는 비전문가들이 밀실에서 논의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LH 혁신이 아닌 대한민국 혁신을 통해 사회 전반의 부동산 투기근절과 주거복지 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만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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