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의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부천시 보건소에 근무하는 오유경 간호사는 공무원이 아니다. ‘공무직’ 노동자로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이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보건소에서 다친 시민의 상처를 처치하거나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상담하는 등 예방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오 간호사가 본격적으로 바빠진 것은 2017년이 지나면서다. 2017년을 기점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보건행정이 이뤄지게 됐다. 오 간호사가 일하는 부천시 역시 ‘찾아가는 건강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시민들의 행정 수요를 찾아 행정기관이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형태로 방문 간호 서비스를 시행하게 된 것이다.

오 간호사 역시 동료 간호사와 짝지어 독거노인을 비롯해 건강 취약계층 가정을 방문해 건강을 점검하고, 필요한 의료지원 서비스를 안내했다. 방문 건강 업무를 하면서 남성 홀로 사는 집이나 정신질환자·알코올중독 환자의 가정을 방문할 때면 두렵기도 했다. 혼자 사는 남성이 여성 방문 간호사를 상대로 “성인용품은 안 가져 왔냐”고 희롱하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부천시는 ‘찾아가는 건강 서비스’로 경기도가 주최한 정책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여러 언론에 ‘자식보다 나은 방문 간호사’라는 제목으로 미담이 소개되기도 했다.

오 간호사를 비롯한 부천시 보건소 보건직종 노동자들은 지난해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후 선별진료소에 투입돼 방역의 최전선에서 더욱 바빠졌다. 선별진료소에 파견돼 시민들을 상대로 코로나19 감염병 상담과 검체검사, 역학조사 지원, 자가격리 관리 등 방역 업무는 물론 백신 접종센터에서 이동 접종 등의 업무에도 투입되고 있다.

오 간호사는 상시화된 비상근무와 초과근무로 육체적 한계 속에서도 시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부천시의 방역 정책에 군말 없이 살인적 노동강도를 감내해 왔다. 물론 오 간호사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사회 보건의료 종사자들 모두 오 간호사처럼 직업의식을 발휘해 헌신적으로 일했고, 시민들의 격려로 방역 업무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들의 헌신에 기대어 방역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6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속 조합원이 근무하는 의료기관 102곳을 조사한 결과 2020년 공공병원의 간호사 이직률이 45%에 이르렀다. 2명 중 1명이 이직을 하는 셈이다. 지방의료원은 최대 약 23%의 이직률을 보였고, 민간 중소병원은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평균 약 37%의 이직률이 조사됐다.

간호사 이직률의 가장 핵심 원인은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조건이다.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환자수가 16.3명으로 미국(5.3명), 영국(8.6명)의 두세 배가 되는 현실 속에서 높은 노동강도가 이들을 현장에서 떠나게 만든다. 여기에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한 업무 부담은 이들의 이직을 더욱 가속화했다. 2019년에 보건의료노조가 소속 36개 사업장을 조사한 자료에서 간호사 이직률이 15.55%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방역의 최일선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는 간호사들의 이렇듯 높은 이직률은 무엇을 의미할까. 환자의 안전이 위험해지고 간호서비스 질 하락으로 연결돼 시민 건강에 큰 위협이 될 것이란 점이다. 의료인으로서 이들은 환자에 대한 헌신과 책임윤리를 교육받는다. 이들이 무책임해서 현장을 떠나는 것일까.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위험 업무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보건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을 긍정하며 방역 업무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다. 시민들의 격려에도 현장에서는 정부의 차별적 근로조건이 보건 노동자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다. 한 예로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는 지난해 2월부터 공무원 보수규정에 따라 비상근무수당이 지급됐으나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직 보건 노동자들에게는 수개월이 넘게 지급되지 않았다. 또한 임시진료소에 파견돼 지원업무를 수행하는 중앙사고수습본부 소속 간호인력의 경우 위험수당을 포함해 1일 25만원의 임금이 지급되는 데 비해 장기간 비상근무체제 속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지자체 보건직 노동자는 1일 10만원의 임금을 받는 게 대표적이다.

이들은 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며 부천시와 교섭에 나섰다. 그러나 부천시는 “2021년 공무원임금 인상률 0.8% 이상은 인상할 수 없다”며 여섯 차례 넘는 임금교섭에서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결국 보건소 공무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은 오 간호사는 현장을 떠나는 대신 동료들과 함께 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며 머리띠를 묶었다.

지난해에는 우리 사회가 재난 위기 속에서 비상근무로 힘든 보건 노동자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무작정 보건 노동자들의 열정과 희생을 갈아 넣어서는 정부의 방역 행정은 물론 시민의 안전도 보장하기 어렵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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