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지난 주말에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4차 유행기로 접어든 탓에 잠시 망설이긴 했으나 지인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어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뒤 조천읍에 있는 카페 ‘시인의 집’에 들러 주인장 손세실리아 시인을 만나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진 다음 협재해수욕장으로 갔다. 바로 앞에 비양도가 바라보이는 해수욕장에는 늦은 오후였음에도 제법 많은 이들이 바닷물에 들어가 있었다. 해수욕을 즐기러 온 건 아니었기에 해안가를 거닐며 풍광과 사람 구경을 하다 만찬(?)을 누릴 수 있을 만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제주에 왔으니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서 만난 게 딱새우였다. 새우구이는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고, 새우회도 더러 맛을 보기는 했다. 지난봄에는 귀하고 비싸다는 독도새우를 맛보기도 했다. 독도새우라는 말은 특정 새우를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 독도 인근에서 잡히는 도화새우, 닭새우(가시배새우), 꽃새우(물렁가시붉은새우)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다 보니 도화새우·닭새우·꽃새우는 국어사전 표제어에 있지만 독도새우라는 말은 찾을 수 없다. 언젠가는 독도새우도 표제어에 오를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딱새우는 어떨까? 딱새우는 제주와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잡힌다. 등껍질이 딱딱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머리 앞부분이 마치 가재를 닮은 형상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국물을 내는 용도로 많이 썼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회로 먹는 맛이 일품이라는 소문이 나서 찾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처음으로 딱새우 회를 먹게 된 셈인데,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이유가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식감이 좋았다.

그런 즐거움과 별개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건 순전히 국어사전 탓이다. 어느 국어사전에도 딱새우가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잎새우·옆새우·밀새우·딱총새우 등 낯선 새우 이름이 꽤 많이 올라 있다. 딱새우는 정식 명칭이 아니라 바닷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부르는 이름이고 정식 명칭은 가시발새우라고 한다. 제1가슴다리가 길게 뻗어 나와 마치 가시발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시발새우도 표제어에 없다는 사실이다. 국어사전 편찬자들이 딱새우나 가시발새우라는 이름을 홀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딱새우라는 말을 언제부터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옛 신문 기록을 찾아보니 1990년도 기사에 나오는 걸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사용했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이 1999년에 처음 발간됐으니 그때 이미 딱새우라는 말이 제법 통용되고 있었을 텐데 왜 놓쳤을까?

이런 식의 아쉬움을 느낀 게 처음은 아니라서 당황스럽지는 않지만 우리 국어사전의 문제점을 생각하는 마음은 씁쓸하다. 국어사전에 자리 잡지 못한 우리말은 무척 많다. 새우뿐만 아니라 참문어나 돌문어 같은 말도 국어사전 표제어에서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내가 국어사전에서 버림받은 말들만 모아 볼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마음먹고 모아 보니 책 한 권의 분량이 됐고, 조만간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딱새우 이야기가 너무 길었나 보다. 첫날은 딱새우 덕분에 입이 즐거웠는데, 둘쨋 날 저녁에는 함께 간 지인이 흑돼지를 먹어 보자고 해서 애월 바닷가 구경을 한 다음 근처 고깃집을 찾았다. 제주도 돼지는 본래 사람의 인분을 먹여 키운다고 해서 똥돼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곳이 거의 없다 보니 똥돼지라는 말도 점차 잊히는 중이다. 대신 제주 돼지들은 털과 껍질의 빛깔이 검다고 해서 흑돼지로 불리며, 제주도 고유의 돼지 특산품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똥돼지와 흑돼지라는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나마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펼치면 두 낱말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주문을 하기 위해 차림표를 보던 중 근고기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왔다. 근 단위로 판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제주 사람들이 먼저 쓰던 말인데, 요즘은 다른 지방에서도 더러 근고기를 이름으로 내건 식당을 만날 수 있다. 근고기는 잘게 썰어서 나오는 게 아니라 덩어리째 구운 다음 어느 정도 익으면 먹기 좋도록 한입 크기로 잘라준다. 대개 종업원들이 굽고 잘라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근고기도 딱새우와 마찬가지로 국어사전 바깥에서 머물고 있다. 제주 사람이 아니면 근고기라는 말을 낯설게 여길 수는 있다. 평소 접해 보지 않은 말이라 그럴 텐데,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제주 방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제주 방언은 그 지역 사람들만 쓰는 독특한 어휘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근과 고기는 둘 다 표준어다. 그러니 표준어 둘을 합쳐 만든 합성어를 제주 방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은 제주를 벗어난 곳에서도 사용하는 말이다. 사용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해서 국어사전 밖으로 내칠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딱새우도, 근고기도 오랜만에 제주도를 찾은 낯선 방문객을 환영해 줬다. 덕분에 즐거운 마음을 안고 육지로 귀환할 수 있었다. 다만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많은 낱말을 생각하면서 우리 국어사전이 하루빨리 그들에게도 거주의 자유를 허락해 주기를 빌고 또 빌었다.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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