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20대 취업준비생이 역대 최고로 많고, 구직단념자의 절반이 청년층이란 뉴스가 이번 주 내내 여러 언론에 실렸다. 취준생 3분의 1이 공기업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한국전력공사는 몇 년째 ‘입사하고 싶은 공기업 1위’를 기록 중이다. 결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이런 와중에 한전 간부급 전 직원이 입사 청탁을 받아 구속됐다는 뉴스도 나왔다.

한전 지사 과장급으로 일하던 한 50대 A씨가 친구 B씨의 친구 C씨로부터 취업을 청탁받았다. A씨는 로비자금 3천만원이 필요하고 채용되면 추가로 1억원이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사람은 현금 3천만원과 60만원 상당의 굴비 2상자를 받았다. 청년들의 간절함을 팔아 제 잇속을 챙긴 그에게 광주지법은 실형을 선고했다.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그를 법정 구속했다.

그는 2016년 8월과 2017년 6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린 고향 친구 B씨의 변호사법 위반 재판에 나가서 취업 청탁 명목으로 자신이 돈을 받은 적이 없고 “B씨에게 ‘취업이 안 되니 혹시 (C씨에게) 돈을 받았으면 돌려주라’고 했다”며 B씨가 처벌받도록 위증한 혐의(모해위증)도 받고 있다. 죄질이 꽤 나쁘다.

법원은 “A씨는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임에도 청탁성 금품을 받았고 타인이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증언을 해 죄질이 중대하다”며 “차명 전화 등을 이용하고 진술을 맞추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고 시도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B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A씨에게 1천만원을 요구했고 제삼자 계좌로 송금받았다. A씨는 수사가 시작되자 취업 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다면서 친구 B씨가 한전KPS 공사 수주 명목으로 3천만원을 제공했고 B씨에게 건넨 1천만원은 차용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C씨의 차명 휴대전화에 녹음된 A씨와 C씨 간 대화 내용, A씨가 변제 독촉을 한 적도 없는 점 등을 토대로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안의 형님 한 분은 80년대 초 친척 소개로 한전에 들어갔다. 당시는 다들 그랬다. 지금처럼 공채 제도가 있었지만, 공기업은 늘 미달이어서 이렇게 옆문과 뒷문도 열려 있었다. 낮은 임금과 강압적인 조직문화 때문에 공기업은 청년들에게 인기 있는 직장이 아니었다. 매번 선거 때만 되면 관권선거 등 부당한 정부 시책에 동원되는 관행도 한몫했다. 그 형님도 두어 달 다니다가 월급이 너무 적어 그만뒀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것과 거리가 먼 공기업 업무가 40년 전 청년들에겐 매력을 줄 수 없었다. 당시 청년들은 역동성이 높은 민간기업을 선호했다.

반면 지금은 민간부문이 더 이상 역동적이지 않고, 극소수 재벌기업을 빼고 나면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만큼 노동조건과 처우가 열악해져, 청년들은 평생 직장인 공기업과 공무원 일자리에 매달린다.

대선이 불과 7개월 남짓 남았다. 여야에서 20여명의 후보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언론은 이들의 전언 보도를 앞다퉈 내놓지만, 고용시장에 과거와 같은 역동성을 불러올 공약을 내미는 이는 없다.

노무현 탄핵과 전두환 미화 찬양, 박정희 찬양까지 수십년 지난 얘기까지 소환하며 서로를 흠집내지만 똑부러진 것 하나 없이 말싸움만 하고 있다. 고용시장을 1도 모르는 한 후보는 주 120시간 노동을 말했다가 자살골을 넣고 말았다.

그나마 연금개혁 같은 미래 이야기를 하는 후보라고는 유승민 전 의원 정도에 불과하다. 언론이 이렇게 대선 후보들 입만 쳐다보고 속보 경쟁하는 사이 국민들은 또다시 차악의 후보를 뽑아야 할지 모른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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