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남표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

새우인가 복숭아에서 화끈한 맛이 난다고 한 친구가 있었다. 나에게 복숭아는 털을 벗기면 속살이 설탕 덩어리마냥 뽀얀 과육이 달콤하고, 나에게 새우는 이러나저러나 요리의 감칠맛을 더해 주면서도 껍질을 벗기면 탱글탱글한 맛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복숭아인지 새우인지 무언가에서 화끈한 맛이 난다고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거짓말하지 마”라고 말했다. 갑자기 이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해 여름 허리디스크가 터져 두 달간 와식 생활을 하던 때였다.

허리가 오랜 기간 안 좋았던 나에게 병원이 내린 진단명은 신경뿌리병증을 동반한 요추 및 기타추간판 장애였다. 허리에 욱신욱신한 통증을 겪은 사람, 허리의 일부가 텅 비어 있는 느낌을 가진 사람, 골반부터 발가락 끝까지 찌릿한 방사통을 겪어본 사람 모두 한 번은 들어봤을 이 질병은 속칭 허리디스크라고 칭한다. 추간판이 제자리에서 탈출해 신경을 압박하면서 통증이 발생하는 질병이다. 이 질병의 통증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칼로 찢는 느낌부터 다리가 화끈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통증을 표출하는 방법과 정도는 통증의 강도, 통증을 감각하고 표현하는 언어능력, 질병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 통증이 만성적인지, 통증을 인내하는 문화가 있는지, 조력자와의 관계, 통증이 줄어들 기대 등에 따라 다르다. 참을 수 없는 아픔에 신음이 삐져나오는 것은 신체의 변화를 알아달라고, 그리고 도와달라는 호소의 목소리다. 그럼에도 남의 암보다 내 감기가 더 아프다는 말처럼 조력자나 주변인은 환자가 통증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정서적·물질적 도움과 따스한 위로를 줄 수 있더라도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다.

디스크로 인한 와식 생활을 하기 전 사무직으로 일을 했고, 1주 평균 노동시간은 50~60시간 안팎이었다. 일을 하면서도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억지로 걸어야 했다. 그런 노동을 하러 밟았던 출근길은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통증의 순간이고, 지금도 고통을 상기시키는 길이다. 지하철역에서 사무실까지 걷는 10분의 시간은 10점 만점에 8점의 통증을 참기 위해 왼쪽 엉덩이를 부여잡고 엉거주춤하게 걸었던 비정한 시간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지금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그런데도 옛 일터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아프냐며 위로를 건넨 동료가 있었고, 아픈 노동자를 보호하는 여러 규정이 있어 그 혜택을 봤기 때문이다.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않았더라도 질병을 겪는 노동자에게 보장한 1개월 간의 유급병가가 대표적이다. 관리자나 동료는 노동자가 스스로 아픔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병가 사용을 방해하거나 반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프면 쉬어”라고 말해 줬다. 그 덕에 생계를 유지하며 회복을 위한 하루 22시간짜리 와병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새우인지 복숭아인지 화끈한 맛이 난다고 했던 친구를 떠올리게 됐다.

한국의 민간기업에서 업무 외 질병·부상을 입은 노동자에게 유급병가를 주는 비율은 7.3%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한 규정마저도 “할 수 있다” “허가할 수 있다” 같은 의무가 아닌 경우가 다수라고 한다. 국가공무원복무규정은 업무상 질병이 아니더라도 질병 또는 부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연 60일의 범위에서 행정기관의 장이 병가를 승인할 수 있다고 정했지만, 공무원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소수의 사람에게 보장된다.

급기야 최근 이케아에서는 단체협약에 제한적이나마 임금을 보장하는 유급병가를 규정했지만, 정작 노동자가 장기병가를 신청하면 수술을 받는 게 아니면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유급병가 사용을 반려하거나, 진단서상 2개월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적혀있는데 3주로 기간을 줄이기도 했다. 마치 이해받지 못한 통증은 업무상 관련이 없거나 돈 받고 쉴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나마 쉴 권리 보장을 위한 상병수당에 대한 논의가 한국에서도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상병수당 및 유급병가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철중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병수당을 공적 재원으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직간접적으로 쉴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뿐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 병가휴가 제도가 도입된 비율은 85.3%로서 굉장히 높지만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2.5%에 불과하다. 유급병가 규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세태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탓에 유급병가 또는 상병수당에 대한 한국인의 문맹률은 87%라 봐야 하지 않을까.

새우인지 복숭아가 화끈한 맛이라고 했던 그 친구는 알레르기가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라고 했던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에 대한 문맹에서 벗어나는 데 여러 시간이 걸렸다. 통증을 견디면서도 생계를 유지하며 쉴 수 있었던 나는 몸이 아파서야 유급병가의 소중함을 배웠다. 업무상 질병도 아닌데 왜 회사에서 또는 사회에서 그 시간을 책임져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개인이 오롯이 안을 수 없는 통증과 가난은 제도적 보완으로 극복해야 한다.

“아프면 쉬어”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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