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콜바비치는 관광지치고는 조용한 시골마을이었지만, 잠귀 밝은 이들에게는 꽤나 소란스러운 곳이기도 했다. 동네 부지런한 닭님들과 개님들이 경쟁하듯 울부짖는 통에 해변 마을의 새벽은 꽤 시끌벅적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강제 기상. 일어난 김에 아침밥 먹기 전까지 오늘의 일정을 그려 본다. 생전 처음 와 보는 곳이지만 동네가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여행 오기 전에 구글 스트리트뷰로 워낙 많이 돌려 봤던 탓에 몇 번은 와 본 듯한 기시감을 느낄 정도가 돼 버렸으니. 시골 동네를 오가는 버스라고 해도 정기적인 노선이라면 구글 지도에서 좀처럼 놓치지 않으니 예전처럼 물어물어 힘겹게 찾아갈 일도 없어지긴 했다. 오늘은 콜바비치를 떠나, 고아의 중심가인 파나지를 둘러볼 예정이다.

콜바비치에서 파나지까지는 2시간은 움직여야 하니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움직여 두기로 했다. 일단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 마르가오까지 로컬버스를 타고 30분쯤 간 다음, 이곳 터미널에서 파나지까지 가는 직행버스로 갈아타 한 시간쯤 가면 파나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로컬버스를 갈아타며 가는 길은 번거롭기는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도의 로컬버스들은 지루할 틈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점에서 출발하는 로컬버스의 운전석 바로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오늘의 여행을 시작한다. 운전석 주변에 어지럽게 매달린 화려한 힌두 장식들이 차가 움직일 때마다 정신 사납게 딸랑거린다. 오전 9시도 채 안 된 시간인데도 거침없이 지져 대는 인도의 태양은 어김없이 버스를 찜통으로 만들었다.

버스는 찜통이 돼 가는데, 사람들은 서는 곳마다 꾸역꾸역 버스로 밀고 들어온다. 이내 가득 찬 사람들이 저마다 내뿜는 땀 냄새가 저절로 창문 밖으로 코를 옮기게 한다. 코를 내민다 한들 피난처가 마땅한 것도 아니다. 비포장도로의 마른 먼지가 기다렸다는 듯 콧속 깊숙이 파고든다. 버스는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며 중앙선 따위는 가볍게 넘나들고 있다. 마침 운전석 뒷자리라 이 거침없는 질주를 제대로 맛보는 중이다. 파나지에 도착도 하기 전에 이미 반쯤은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파나지에 도착하고 보니 벌써 밥때가 됐다. 동네 소문난 맛집에서 피쉬탈리(생선백반)와 새우튀김으로 배를 채운 뒤, 소화도 시킬 겸 슬렁슬렁 걸어서 근처 재래시장에 가 보기로 한다. 30분 정도 거리를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면서 걷다가 우연히 들여다본 골목에 화려하게 꽃장식을 한 자동차가 눈에 들어왔다. 꿍짝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옆 건물 안으로 제대로 차려 입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걸 보니 뭔가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궁금한 마음에 쭈빗거리다 건물 앞에 서 있던 노인네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낯선 얼굴이 기웃거리는 모습을 본 어르신이 격한 손짓으로 부른다. 서툰 영어로 지나는 길에 음악 소리가 나서 기웃거렸다고 말했더니, 이 어르신 대답 대신 웃으며 내 등을 건물 안으로 떠민다.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 있던 사람들을 밀치고는 우리 가족이 탈 자리를 만들어 태우는데 민망하기 짝이 없다. 어르신을 따라 올라간 건물 3층은 잔뜩 멋을 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얼떨결에 남의 결혼식장에 초대받게 된 것. 식장 안 쪽에서 우리를 넘겨받은 배가 푸짐하게 나온 중년 남성은 결혼식장에 낯선 외국인이 온 게 행운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인사를 시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데, 급기야 신랑·신부와 그 부모인 듯한 이들에게까지 인사를 시키고 만다. 그리고는 손으로 밥 먹는 시늉을 하며 내게 ‘푸드 푸드’라고 말한다. 방금 밥을 먹었다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했지만 막무가내. 연회장 뒤쪽 식당으로까지 기어코 우리를 데리고 갔다.

식당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인도식 뷔페 음식이 쫘악 깔려 있다. 커리 종류만 해도 열댓 개는 돼 보일 정도니 그야말로 제대로 된 인도 잔치상을 구경하게 된 셈이다. 배불뚝 형님이 접시 한가득 음식을 담아서 내게 건네주는데, 방금 채우고 온 배인지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아~ 인도에서 음식 고문을 당하게 되다니. 이런 건 전혀 계획에 없었는데 난감하다. 접시 넘치도록 담긴 성의를 무시할 수 없기도 하고, 인도식 뷔페 맛을 언제 또 보려나 싶은 마음도 있어 반 접시 정도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대충 먹고는 식장을 빠져나오려 생각했는데, 이 형님 옆에 딱 붙어서 떠날 생각이 없으시다. 접시가 반쯤 비워지자 음식을 또 채우려고 하신다. 정말 간절한 표정으로 더는 못 먹겠다고 거듭 말씀드렸더니, 이 형님, 더없이 선한 눈망울로 섭섭한 표정을 지으시는데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드신다. 이제는 가봐야겠다고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힌 뒤 겨우 식장을 빠져나오면서도 뒤통수가 시큰거린다. 뜻하지 않은 환대에 부조금이라도 내고 나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리품은 좀 팔게 되지만 걷는 여행의 재미는 이런 난데없는 사건에 있다. 물론 사고가 될 수도 있다. 이불 밖은 늘 위험하니까.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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