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

근로기준법 9조(중간착취의 배제)는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성경 데살로니가 후서 3장10절에 나오는 문구다.

내가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면서 하청업체 사장 얼굴을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야 6년 만에 처음 봤다. 어찌된 일인지 하청 사장 얼굴 보는 것이 원청 사장 얼굴을 보는 것보다 더 힘든 세상이다.

아사히글라스 원청 사장은 회사에 출근한다. 하지만 하청 사장은 출근하지 않는다. 하청 사장은 시설과 기계설비가 없다. 생산시설 없이도 수백명씩 고용한다. 오로지 싼값에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서 원청에 비싸게 팔아먹는다. 어떻게 사람을 사고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단 말인가.

고 김용균이 일했던 한국서부발전은 하청업체에 1인당 월 520만원의 급여를 지급했다. 하지만 김용균이 받은 급여는 220만원이다. 이런 구조를 언제까지 인정할 것인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한다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 간접고용은 사라져야 한다. 파견법은 노예처럼 사람을 사고파는 것을 허용한다.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나라에서 제도화된 인신매매가 판친다. 섬뜩하다.

공공기관도 다르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고객센터를 민간위탁으로 운영한다. 민간위탁업체에게 상담사 1인당 월 300만원 이상의 급여를 지급한다. 이중 100만원가량을 업체가 가져간다. 민간위탁업체에 고용된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1천450명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외주화·간접고용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본사에 칼날이 있는 철조망을 설치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6월,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을 중단하라며 단식에 들어가 충격을 줬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공공기관장이 벌인 행태다. 참으로 포악하고 염치없다.

2019년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뜨거웠던 투쟁을 벌써 잊었는가. 그들은 도로공사 본사 로비를 145일간 점거하며 싸웠다.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했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도로공사 정규직으로 모두 직접고용 됐다. 당시 끝까지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던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당연한 결과다.

김용익 이사장은 뻔한 결과를 반복해서 안 된다. 공공기관의 책임자답게 처신해야 한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건강보험공단의 대민창구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유령이 아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건강보험 자격·보험료·보험급여·건강검진·의료급여·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총 1천69개의 상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매일 상시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누가 뭐래도 건강보험공단에서, 공단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 왔다. 그런 이들에게 건강보험공단이 “공단 직원이 아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단순하다. 직접고용은 순리다. 김용익 이사장은 진정성 있는 태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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