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근로기준법의 직장내 괴롭힘 방지 조항이 시행된 지 2년을 맞았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얼마나 법의 효용성을 실감하고 있을까. 직장갑질119가 지난 6월 공공상생연대기금과 함께 19세 이상 직장인 1천명을 상대로 직장내 괴롭힘 경험을 조사했다. 피해 노동자의 약 70% 가까이가 직장내 괴롭힘 후 참거나 모르는 척했고, 20% 가까이가 퇴사했다. 항의했다는 노동자는 30%에 그쳤다(복수응답 가능).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는 답이 약 62%였고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라는 답도 약 27%를 차지했다. 직장내 괴롭힘 경험자(329명)의 약 52%가 5명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했고,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20대 직장인이 약 40%를 차지했다. 피해 근로자의 약 38%는 월 150만원 미만을 임금으로 받았다.

근로기준법에 담긴 직장내 괴롭힘에 관한 내용은 네 가지가 핵심이다. 먼저 직장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를 금지했다. 다음으로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의 조치의무를 정하고 취업규칙에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발생시 취할 조치를 기재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직장내 괴롭힘 발생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사용자가 해고 등 불이익을 줄 경우 처벌하도록 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어디에도 직장내 괴롭힘을 행한 가해 근로자에 대한 직접적인 불이익을 예정한 조항이 없다는 점은 의아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노동상담소로 상담을 의뢰하는 대부분 피해 근로자의 핵심 요구사항이 가해 근로자 처벌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그런 의문은 더욱 커진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 조항이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면 가해자 처벌을 통해 직장내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 아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2016년 10월 15개 산업 분야 근로자 300명을 대상으로 직장내 괴롭힘 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기업의 인건비 손실을 연간 5조원으로 추산했다. 기업들은 이 조사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2018년 초부터 확산된 미투운동, 대형병원의 간호사 태움 등 ‘직장갑질’ 사례의 확산, 대기업 오너의 폭행과 막말로 직장내 괴롭힘이 사회적 의제가 된 상황에서 기업들은 근기법상 직장내 괴롭힘 방지 조항 신설 움직임에 또 다른 규제라 인식하며 전전긍긍했다. 그런 기업들이 직장내 괴롭힘 방지 조항을 근기법에 신설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업의 생산성에 있었다.

시행일부터 2년이 되는 지금 직장내 괴롭힘 방지 조항이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정의실현보다 기업의 생산성에 맞춰진 결과는 직장내 괴롭힘 조항에 대한 피해 근로자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상담을 의뢰하는 피해 노동자 열에 아홉은 갑질을 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사용자에게 직장내 괴롭힘 사실을 신고하면 사용자가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가해 근로자에게 적절한 인사조치를 취하도록 근로기준법에 정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면 “사장한테 신고하면 사장이 가해 노동자인 부장 편을 들지 자기 편을 들겠냐”며 답답해한다. 만약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했다고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면 사용자를 상대로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알려도 “퍽이나 사장이 처벌받겠다”며 냉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가해 노동자에 대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형사 처벌이 이뤄지게 되면 검찰에서 직장내 갑질 행위 자체를 좁게 해석하게 되고 고의성 입증에서도 어려움이 발생해 피해자가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고용노동부에 “행위자에 대한 처벌규정 등 적절한 제재규정이 없는 한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 도입을 권고했다. 이를 기반으로 보면 지위를 이용해 폭행 등을 반복적으로 행하고 그 수위가 중한 직장내 괴롭힘 가해 행위자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 8조의 폭행죄 대상에 포함해 처벌할 필요가 있다.

또한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직장내 괴롭힘 방지 조항이 전면 적용돼야 한다. 직장갑질119 조사에서 직장내 괴롭힘 경험자의 절반 이상이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였다. 인권위 역시 지난해 5명 미만 사업장에 직장내 괴롭힘 방지 조항 적용을 권고하며 “소규모 사업장일수로 가해자와 피해자 간 접촉이 빈번해 괴롭힘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권위 지적처럼 상급자의 직장갑질에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라고 해서 방치할 수는 없다. 특별히 사업장의 재정지출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 방지 조항 전면 적용이 시급하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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