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

과거 대형마트의 매출은 매장에서 발생하는 오프라인 매출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많은 사람들은 마트에 직접 방문하기보다 온라인 채널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매출이 늘어나면서 온라인에서 주문한 물건을 마트에서 고객이 요청한 장소까지 배달해 주는 배송노동자의 필요성 역시 함께 증가했다. 대형마트 입장에서 이렇게나 필수적인 인력임에도 대부분 대형마트 배송노동자들은 마트와 직접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계약 내용만 놓고 보면 배송노동자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배송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형마트는 운송업무를 담당하는 운송업체에 화물운송업무를 위임하고, 운송업체는 배송노동자와 다시 화물운송업무를 위임한다.

대형마트의 배송업무가 다른 화물배송과 다른 점은 신선도 유지와 빠른 시간 내 배송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배송 목적물의 특징으로 인해 대형마트는 배송노동자와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전혀 맺고 있는 것이 없음에도 배송노동자의 노무제공 과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며 상당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형마트는 근로계약을 포함해 어떠한 계약도 배송노동자와 체결한 점이 없다는 점을 들어 아무런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

대형마트 3사는 모두 모바일 프로그램을 통해 배송노동자의 배송업무를 상시 관리·감독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모바일 앱을 통해 배송노동자의 배송 시간과 물량을 배정하고 동선까지 특정한다. 사실상 배송기사는 앱을 통한 대형마트의 배송지시에 따라 배송업무를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대형마트의 배송지시는 단순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보조적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닌 근로기준법, 적어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권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왜냐하면 대형마트가 지시한 배송방법(시간·동선·물량 등)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대형마트가 직접 혹은 운송사를 통해 운송료 삭감이나 계약해지 등의 페널티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많은 운송사들이 배송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 혹은 가입이나 단체행동을 금지하고 이를 계약해지 사유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중 하나인 노동 3권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배송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계약내용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버젓이 계약의 해지사유에 포함돼 있고, 실제로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계약이 해지된 배송기사가 존재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에 더해 배송노동자들은 자신이 배송업무를 하지 못하는 날 비용을 부담해 배송업무가 차질없이 이뤄지도록 해야 하며,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에도 후임자가 배송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 때까지는 배송업무를 계속해야 한다.

운송사와 배송노동자가 체결한 위탁계약이 ‘배송업무’라는 사무처리만을 위탁한 진정한 의미의 위임계약에 해당한다면 운송사가 배송노동자에게 위와 같은 비용을 전가할 수 없다. 운송사(위임인)는 배송노동자(수임인)가 배송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보수를 지급하지 않으면 될 뿐이며, 배송노동자에게 위탁한 배송업무라는 사무의 완전무결한 수행을 요구하거나 이를 위한 비용 지출을 요구할 수 없다. 게다가 대형마트 또는 운송사가 배송노동자의 배송 시간과 동선 등을 구체적으로 통제하는 것 역시 위임계약에 의할 때 허용되지 않는 행위다. 배송노동자는 선관주의 의무에 따라 배송만 하면 될 뿐 배송 순서와 배송 시간에 구애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엄격한 업무수행의 통제가 이뤄진다는 것은 배송노동자의 노무제공 실태가 위임계약이 아닌 사실상 근로계약에 부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들이다.

대형마트와 운송사가 계약체결 당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결정한 계약조건으로 인해 배송노동자들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위임계약 당사자라면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까지 부담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보호받아야 할 헌법상 기본권 중 하나인 노동 3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의무는 있고 권리는 없는 배송노동자들은 그럼에도 아무런 불만 없이 대형마트의 지시에 따라 고객의 물건을 배송해 준다. 이제 다시금 생각해 볼 때다. 배송노동자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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