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이번에도 국회와 정치에 관한 낱말 몇 개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아래 낱말을 보자.

통상의회(通常議會) : <정치> 정기적으로 소집되는 국회.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법에 따라 매년 한 번씩 100일간의 회기로 소집된다.=정기 국회.

정기국회를 통상의회라는 말로 부르는 게 사실일까? 통상의회라는 말은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만들어진 제국의회에서 사용하던 용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정가 소식을 전하는 신문기사에 가끔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1947년에 새로운 일본국 헌법이 만들어졌으며, 그때부터는 통상국회(通常國會)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국회 운영과 관련해서 통상의회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

위원부탁(委員附託) : <법률> 의회 같은 데에서 토의할 안건의 심사를 전문 위원에게 부탁하는 일.

국회의원들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이 말도 일본 제국의회 때 사용하던 용어로 당시 우리 신문에 가끔 등장하긴 했으나 일본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만 드물게 쓰였다. 일본 제도와 법률에만 있던 용어들이 우리 국어사전에 무척 많이 실려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사실을 서술하고 있지 않아 마치 우리가 사용하던, 혹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용어인 것처럼 받아들일 소지가 많다. 그런 구분을 해 주는 게 국어사전의 당연한 역할 아닐까?

대외연(對外軟) : <정치> 국제 정치에서 다른 나라에 대하여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는 일.

대외경(對外硬) : <행정> 국제 정치에서 다른 나라에 대하여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일.

같은 계열의 낱말인데 왜 분류 항목이 하나는 정치고 다른 하나는 행정일까? 그런 의문은 제쳐 두더라도 딱 봤을 때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가 아닐 거라는 느낌부터 오지 않을까? 일본어사전에 대외연은 없고, 대외경만 그것도 일부 사전에만 실려 있다. <다이지린(大辭林)>에 나오는 풀이를 보자.

對外硬 : 明治初期の條約改正問題で,列國に讓步しながら條約改正を實現しようとする政府に反對して,强硬な外交の推進を要求する主張.

(번역) 메이지 초기의 조약 개정 문제에서 각국에 양보하면서 조약 개정을 실현하려는 정부에 반대하여 강경한 외교 추진을 요구하는 주장.

대외경(對外硬)이라는 용어가 나오게 된 배경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신문에 대외경이라는 말이 더러 등장하고, 그래서 국어사전에 실었을 테지만,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생긴 건지 국어사전 편찬자들이 알고는 있었을까?

해직청구제(解職請求制) : <행정>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 또는 주민의 발의로 공무원을 파면하는 제도.=소환제.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대부분의 일본어사전에 표제어로 실려 있다. 신문기사 하나를 보자.

“2019년 8월 ‘아이치(愛知) 트리엔날레 2019’ 행사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에 불만을 품은 우익세력은 전시를 옹호한 오무라 지사를 몰아내기 위해 일종의 주민소환제인 지방자치단체장 해직청구제, 이른바 ‘리콜’ 운동을 벌였습니다.”(KBS 2021년 2월16일자)

기사에서 해직청구제를 말하며 ‘일종의 주민소환제’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게 한 이유는 해직청구제가 일본 용어고, 우리는 주민소환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프레임 업(frame up) : <정치> 정치적 반대자 등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켜 탄압하고 공격할 목적으로 사건 따위를 날조하는 일.

フレーム-アップ(frame-up) : 事件を捏造したり,犯人にしたてあげたりすること. でっち上げ.

(번역) 사건을 날조하거나 범인으로 꾸며내거나 하는 것. 조작.

국어사전 안에 외래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낯선 외국어가 수없이 실려 있다. 프레임 업(frame up)은 영어와 정치학에 웬만큼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용어다. 왜 저런 용어까지 실었나 싶었더니 일본어사전에 실은 걸 그대로 번역만 해서 국어사전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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