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은 노동생산성 증가로 이어지는가. 답이 정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통념과 달리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투자가 노동생산성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술혁신에 따른 취업시장의 학력 양극화가 사회적 양극화를 야기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은 11일 기술혁신이 고용구조 변화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해 이같이 밝혔다. 연구진은 1996~2017년 ICT 자본스톡과 노동생산성 변화 추이를 분석했다. 자본스톡은 특정 시점에서 파악한 자본의 양을 뜻한다.

전반적인 추이는 ICT 자본스톡 증가와 노동생산성 증가가 일치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1998년 ICT 자본이 전년 대비 5%가량 증가했지만 노동생산성 증가는 0%대 수준에 머물렀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ICT 자본은 전년 대비 1%가량 상승했지만 노동생산성은 되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위기 이후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는 흐름도 사라졌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999년 전년 대비 증가율 1%대에 머문 ICT 자본과 달리 노동생산성은 전년 대비 3% 수준으로 호전했다. 금융위기 때도 유사하게 2010년 노동 생산성은 2% 증가율로 ICT 자본 증가율을 추월했다. 그러나 이후 2017년까지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ICT 자본량을 하회했다. 연구진은 “금융위기 이후 ICT 자본스톡 심화에 따른 노동생산성 증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총고용 증가, 실증 확인 어려워

기술혁신이 총고용을 강화한다는 주장도 실증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연구진은 “전반적으로 기술혁신은 고용 감소를 야기하기보다 총고용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며 “자동화의 직접 효과인 (노동력) 대체 효과와 직무내역 변화는 1996년 이후 지속해서 노동수요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지만 생산성 효과는 큰 폭으로 노동수요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 결과적으로 총고용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총고용량 증가 같은 데이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런 주장은 유사한 보고서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13일 발간한 해외경제 포커스도 디지털 전환으로 생산성이 올라 총고용이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디지털 전환에 따른 생산성 제고는 시차를 두고 해당 기업 생산량을 확대해 전후방 연관기업 고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실례로 제시한 게 일본과 스페인·독일 사례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978~2017년 노동자 1천명당 로봇 1대가 증가할 때 고용이 2.2% 증가했다. 스페인도 1998~2016년 로봇 도입 기업 고용은 50% 증가하고 미도입 기업 고용은 20% 감소했다. 독일도 로봇 도입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줄었지만 서비스업 고용이 늘어 총고용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저숙련 집단 실업 야기 우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총고용 유지가 소득 양극화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ICT 기술혁신은 고학력 고용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 고졸 이하 학력층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며 “금융위기 이후 총요소생산성으로 표상하는 기술혁신은 4년제 대졸 이상으로 정의한 고숙련 일자리만 늘린 고숙련 친화적 기술변화에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이를 전제로 연구진은 기술혁신에 따른 학력별 차별을 막을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기술혁신은 소득분배를 개선하기 위한 별도 노력이나 노동시장 제도 접근이 없는 한 중간임금을 받는 반복숙련 집단 실업과 고숙련 집단 일자리 증가로 귀결할 것”이라며 “경제 전체의 소득분배와 일자리의 고른 개선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연구진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종사자의 1999~2017년 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제조업 내 상위 90분위(상위 10%) 임금 상승률은 다른 분위보다 가파르게 증가했다. 그러나 중위 분위와 하위 10분위 임금 상승률은 2006년 이후 상위 90분위와 격차가 벌어졌다. 서비스업은 모든 분위에서 제조업보다 임금 상승 수준이 낮았다.

연구진은 “과거보다 최근의 기술혁신이 저학력 일자리에 더 부정적이고, 고학력 일자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소득 분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나 노동시장에 대한 제도적 접근 없이는 저숙련 집단의 실업으로 귀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