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장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불평등하다.

2019년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격차는 6.25배에 달한다. 그나마 2018년 6.54배에 비해 소폭 줄었는데, 이는 시장소득이 아닌 정부정책에 의한 분배소득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산소득 격차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순자산 상위 20%와 하위 20% 간에 격차는 125배가 넘어섰다.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더 가파르게 벌어지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부모 찬스’로 드러나는 교육격차는 ‘네트워크의 위계’를 통해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공고히 해 왔다.

이러한 소득격차를 최소한이라도 줄여 생계를 보장하고자 만든 장치가 최저임금제다. 헌법 32조1항에 의거한 제도다. 노동자에게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해 생활안정을 보장하고 저임금 노동을 해소해 임금격차·소득분배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노동조합 밖의 노동자, 노동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의 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최후의 안전장치다.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을 줄곧 반대해 왔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설파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고, 지불 능력이 없어 폐업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견해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악순환의 원인이 최저임금 인상에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외환위기 이후 재계는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했다.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어 도급단가를 후려쳤다.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일삼으며 영세 중소기업에게 위험부담을 떠넘겨 왔다. 골목마다 대형마트를 들이밀어 골목상권을 파괴했다. 과도한 가맹비·수수료·상가임대료로 편의점·대리점주·입점 업주·자영업자를 착취해 이윤을 긁어모았다.

그럼에도 재계는 코로나19를 빌미로, 일자리를 볼모로,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전형적인 가진 자의 약자 갈라치기, 분할지배 전략이다. 재계는 을의 싸움을 부추기고 을들에게 모든 위험을 떠넘겼다. 하루하루 생존 위협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소상공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재계가 조성한 ‘을’들의 싸움, 그 처참한 제로섬 게임에 빠져 절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더 심화한 불평등으로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 다수가 도산하고 있다. 재계가 친 덫에 걸려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분배구조를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만 환원한다면 대기업 갑질, 불공정거래, 조물주 위에 건물주, 폭등한 상가임대료를 방치하게 된다.

이제 가진 자들의 농간에 휘둘려선 안 된다. 시장의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의 결과다. 노동자·자영업자·중소상공인이 이 불평등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을들의 공고한 연대가 필요하다. 시장에 만연한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근절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하도급대금을 최저임금 인상분에 반영시켜야 한다. 카드수수료를 낮추고, 재난 이전에도 높았지만 재난 시기 더 가중된 상가임대료 인상을 멈추기 위해 인상 폭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조치를 요구하자.

을들의 연대만이 불평등한 시장 질서를 바꾸는 일이자, 속수무책으로 벌어진 자산불평등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일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구호는 단순히 최저임금만 1만원으로 인상하잔 뜻이 아니다. 최저임금 1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노동시장, 그 선순환의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지향점이자 방향임을 잊어선 안 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