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정권이 바뀐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대선 분위기가 물씬 난다.

노동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소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약속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외환위기 때 확산한 비정규직에 대해 당시에는 국가도, 사용자도, 노동자도 임시방편이라 여겼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국가와 사용자의 내심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20년 넘게 개선 의지는 없고 오히려 비정규직을 더 늘리려고만 하니 말이다. 그렇게 국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란 개별 사업장의 투쟁과 같은 의미가 됐다. 간혹 시혜적인 소규모 정규직 전환 외에는 정부가 주도하는 자회사 꼼수만 대유행했다. 자회사 채용은 간접고용이다. 여전히 고용이 불안정하고 노동조건 차별이 합리화된다. 관리체계의 이중화로 인해 용역·도급제와 비교할 때 원청의 비용손실도 그대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일 만에 전격 방문해 감히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던 인천국제공항은 4년 지난 지금 직접고용률 2%정도다. 나머지 1만여명은 여전히 자회사 간접고용이다. 인천공항 직고용이 아닌 노동자의 비율은 무려 80%에 달한다. 한국도로공사의 경우 비정규직 요금수납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패소했음에도 직접고용을 하지 않고 6천여명을 자회사에 채용했다. 한국잡월드·강원랜드도 마찬가지로 자회사 채용으로 시끄러웠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의원이 공공부문 정규직화 1단계 전환 대상이 되는 중앙행정기관·교육기관·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지방공기업 등 637개 기관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해 봤더니 정규직 전환을 진행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기관은 37개소였는데 전체의 54.7%가 자회사 형태로 정규직 전환을 진행했거나 진행 중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으니 현재 통계는 54.7%보다 훨씬 증가 했을 것이다. 자회사로 채용했다가 직고용으로 전환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으니 말이다.

새로운 대선으로 왁자지껄 이 정부를 마무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지난 4년 동안 비정규 노동자에게 얼마나 변화가 생겼는지 평가하는 목소리가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비정규 노동자들이 이틀 전 3차 파업에 돌입했다. 이게 현실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원들은 걸려 오는 민원 전화에 응대하는 일을 한다. 직접 대민 업무의 거의 전부이자 공단의 핵심 중 핵심업무다. 특히 코로나19 시대에 업무량이 몇 배는 늘었다. 질병 증세, 검사병원, 접종 예약 문의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이보다 공공성이 짙은 노동이 있을까. 그 전에도 업무량의 차이만 있지 국민건강·의료보험과 관련된 업무라는 점에서 공공성의 질에 있어 차이는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민간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라니. 일반 국민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당연히 공단 정규직으로 알고 있었다. 공단의 정규직이어야 한다. 상시·계속·필수 업무이기 때문이다. 국민 개개인의 건강·의료·재산·가족정보 등 민감정보 처리를 일개 민간 용역업체가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하면 당연히 노동의욕이 떨어진다. 상담원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 결과 전화응대 서비스질이 낮아진다. 배정된 ‘콜’을 한정된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상담원들은 서둘러 전화를 끊기 바쁘다고 고백한다. 공단은 용역업체들의 단가대비 최대 ‘콜’처리수를 비교해 계약한다. 업체들 간, 상담원들 간 ‘콜’처리 실적경쟁이 상당하다. 누가 상담원 개인을 탓할 수 있을까. 구조의 문제다.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비용을 절감하려고 비정규직을 사용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맞서 놀랍게도 단식농성 퍼포먼스까지 하면서 직고용을 거부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공단의 정규직 노조는 연대에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으로 직고용을 반대하기도 했다. 형평성 문제라는 것이다. 내게 해가 없더라도 상향평준화는 억울하다는 심리 또는 혹시 발생할 수 있는 해를 수인하지 않겠다고 미리 밝혀 두는 입장이리라.

상담원은 기존 일반 정규직과 별도 직군이어서 향후 채용규모를 건드리지 않고, 정규직이 되더라도 별도 임금체계를 적용받는다. 기존 정규직 복리후생에 영향을 주지 않아서 결국 누구의 기득권도 훼손하지 않는다. 누구도,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데 국민건강보험공단 파업사태에서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더불어민주당·청와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사업장 갈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손에 ‘자회사’라는 선물을 들고 오는 장면에서만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절한 거리싸움만이 유일한 동력이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지난 4년 동안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이런 방식뿐이었다. 개별사업장 노동자들의 각개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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