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어떠한 기준을 정할 때 최저라는 표현은 그 아래로는 더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저 기준이 모든 경우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공동체 성원 모두에게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면 최저라는 표현이 있을 이유가 없다. 구성원들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보장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최저 기준은 그보다 더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만약 그 힘이 없거나 약하다면 굳이 최저라는 표현보다는 적정·표준·기본·평균 등과 같은 다른 말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가 한참 진행되고 있다. 사용자위원은 최저임금 동결안을 제시하고 노동자위원은 시급 1만800원을 제시했다. 이사이에 이뤄질 최종 결정에 따라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내년 삶이 결정되게 된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들에게만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국가의 16개 법령에 걸쳐 중요한 사업의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업보험과 산재보험에 적용되는 것을 넘어, 고용촉진장려금과 각종 사회보장의 기준이 된다. 지자체에서 결정하는 생활임금도 최저임금을 기초로 해서 결정된다. 즉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기준이 아니라 정부정책과 사업의 기준이 되는 사회적 기준 임금이다.

사회적 대화 또는 사회적 교섭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 논의는 몇 안 되는 사회적 대화의 틀을 가지고 있다. 비록 노·사·정이 아니라 노·사·공익이라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지만, 가장 주목받는 사회적 대화의 장이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라고는 하지만 외부에 비치는 모습은 노사갈등이 심한 단위 사업장에서 마지막 줄다리기 임금협상을 할 때와 같은 모습이다. 평행선을 긋다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중재위원회에 그 결정을 넘겨 버리는 형식이다.

공익위원은 대화를 이끌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합의를 이뤄 내는 전문가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양 당사자의 의견 사이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중재위원, 또는 판정자 역할을 한다. 사회적 대화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정부는 노·사·공익이라는 틀의 바깥에 자리 잡고서, 의지는 관철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모습이다. 총대를 멘 공익위원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식견이 아니라, 정부 입장과 여론의 동향을 얼마나 잘 파악해 내느냐의 능력이다.

그런데 최종 결정에 임박해서 이뤄지는 교섭에서 사회구조와 환경 전반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발표하는 다양한 사회적 논의 지표들을 봤으면 하는 바람도, 사회적 대화에 걸맞게 협상 테이블 바깥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도 현재로서는 역시 무리다.

모든 나라가 최저임금 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교섭을 통해 협약임금이 잘 작동되는 체제라면 최저임금이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는 교섭을 통한 사회적 협약임금이 없다. 임금은 다른 상품과 달리 인간의 노동력에 값을 매긴다는 점에서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노동자가 단체협약 적용 범위 바깥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임금이 시장 논리에 내몰리기 때문에 최저임금 제도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논의는 사회적 기준, 사회임금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의 태도로 진행되기보다는 마치 단위사업장 교섭처럼 진행되고 있다.

만약 현재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올해는 추가적인 로봇이나 자동결제시스템 도입을 중단합시다, 하고 제안하면 어떤가. 일자리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자영업을 선택해 자영업자들의 사업 환경이 너무 나빠지게 됐으므로, 올해는 흑자를 낸 사업장들은 의무적으로 고용을 10% 이상 늘리자고 하면 이상한가. 이것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최저임금을 동결하자는 주장은 더 이상하게 들려야 한다. 기술진보가 사회적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면, 최저임금은 사회적으로 더 유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고, 책임을 방기해서 생겨난 결과를 다른 곳으로 전가하고 있으니 화가 난다. 최저임금 인상은 1인 자영업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래서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최저임금 가지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의제를 제시하라.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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