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교원노조운동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교사노조연맹이 지난달 29일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교사노조연맹을 만든 사람들은 전교조 출신들이다. 이들은 ‘분권형 노조 연합체’라는 새로운 모델을 들고 나왔다. 노조활동 방식도 기존 노조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지난 30일 오후 <매일노동뉴스>가 김용서(57·사진) 연맹 위원장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 위치한 연맹 사무실에서 만났다. 체육교사인 김 위원장 이력은 독특하다. 84학번인 그는 1987년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와 같은 동아리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6월 항쟁 이후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서 ‘학출’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1993년 다시 복학해 교직을 이수하고 2001년 교편을 잡았다.

- 교사노조연맹이 출범한 지 올해로 4년째다. 어떻게 연맹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대학 동기들보다 늦게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교사가 된 후 7년 가까이 전교조에서 전임활동을 했다. 2013년 새로운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을 끝으로 나왔다. 전교조를 나올 때 가장 큰 고민은 젊은 교사들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2016년 서울교사노조를 먼저 설립한 뒤 이듬해 교사노조연맹을 창립했다. 현재 전체 조합원이 3만7천명인데 20대가 16%, 30대가 42%, 40대가 37%다. 전교조에 비하면 아주 젊다. 우리 연맹은 분권형 연합체다. 27개 노조가 있는데 17개 시·도에 모두 지역교사노조가 있다. 별도로 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 보건교사노조를 비롯한 전국단위 교사노조가 9곳 있다. 퇴직교사들이 가입하는 평생교원노조가 6월29일 설립총회를 열었다. 퇴직교원 노조 가입이 허용되는 7월6일 노조 설립신고를 할 예정이다.”

독립적 재정구조, 독자성 사업 집행
노조는 정치지향 없어야

- 분권형 연합체가 뭔가.
”노조 스스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도록 열린 구조를 지향한다. 사업의 독자성과 재정의 독립성을 단위노조가 가지고 있다. 전교조는 내가 활동할 당시 중앙에서 조합비의 70%를 쓰고 지부에 30%를 내리는 구조였다. 산별노조는 중앙집권적으로 운영된다. 중앙에서 결정한 사안을 지침처럼 단위사업장으로 내린다. 우리는 반대다. 조합비(1인당 5천~1만원)의 20%를 맹비로 납부하고 나머지 80%는 단위노조가 쓴다. 독자적으로 사업을 기획한다. 교육부 장관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면서 갈수록 교육감 권한이 커지고 있다. 지역노조의 역할도 그만큼 높아졌다. 보건교사·사서·영양교사 등 전국단위 노조의 경우 학교에 1명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은 교육부와 교육청에 자기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전국단위 독자노조로 조직되면서 교육당국과 직접 정책을 협의할 채널을 갖게 됐다. 노조가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속도도 빠르다. 우리 연맹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기교사노조는 1만여명의 조합원이 네이버밴드에 가입하고 여기서 의사소통을 한다. 순식간에 의견이 모인다. 현장에서 정책을 발굴하고 해법도 현장에서 찾는다. 젊은 조합원의 활발한 온라인 소통을 보면 집행부가 무섭고 두려울 정도다.”

“연맹의 출발점은 권위주의 정부 시대와 교육자치 시대는 노조 활동도 달라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출범을 앞두고 유럽 분권형 노조 모델을 참고했다”고 인터뷰에 배석한 유윤식 연맹 정책위원장이 설명했다.

- TV 시청률이 높다고 꼭 좋은 프로그램은 아닌 것처럼 다수의 의견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 않나. 포퓰리즘의 우려는 없을까.
“노조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지향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노조는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익단체다. 교원노조는 교사의 이익 대변을 존립 근거로 한다. 정치적 지향을 실현하려면 그런 조직을 별도로 만들면 된다. 이익집단의 속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충실하는 것이 노조의 역할이다. 교사가 교육활동에 전념하도록 하는 역할, 교사들이 가진 경제적 이익, 사회적 지위 향상이 바로 교원노조의 역할이다. 물론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익집단이 사회정의와 동떨어져 고립된 채 자기 이익을 관철시킬 수 없다.”

돌봄은 교육 아냐 … 공무직은 스태프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만들어야

- 교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놓다 보면 학교 내 다른 직역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초등 돌봄교실 지방자치단체 이관 문제나 교육공무직에 교직원 지위를 부여하는 법안 문제로 충돌하기도 했다.
“돌봄전담사나 공무직의 노동조건 개선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학교 내에서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공무직은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스태프 역할이다. 그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해태하거나 방기하는 경우 갈등이 발생한다. 주로 20~40대 젊은 교사들과 충돌이 많다. 돌봄문제도 마찬가지다. 돌봄전담사가 돌봄교실 운영의 지자체 이관에 반대하는 이유는 고용불안 때문이다. 어떻게 돌봄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 물론 고용불안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공무직이나 돌봄전담사도 학교 교육의 주체로 인정해 달라는 목소리 아닐까.
“학부모들에게 학교는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 초등돌봄은 교육예산으로 이뤄지면서 행정업무까지 교사에 전가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 초등돌봄은 국가예산에 의한 지자체 통합운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 코로나19로 등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교육격차가 심각해졌다. 해법은 무엇인가.
“등교수업을 통해 심화하는 교육격차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교육부가 수용했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당장 과밀학급의 경우 대체할 교실도 없고 교사도 없다. 우리는 골조와 마감, 전기시설까지 모두 만들어져 블록처럼 쌓기만 하면 되는 모듈러 교실을 요구하고 있다. 정교사를 투입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여건과 처지가 여의치 않으면 기간제 교사라도 투입해 단기간에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단평가를 전면화하는 대안도 제시했다.”

- 진단평가를 전면화하면 소득에 따른 교육격차가 해소될 수 있나. 오히려 서열화가 강화되는 것 아닌가.
“줄 세우기식 평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분명 있다. 너무 이른 시기에 서열화와 열패감, 낙인을 경험하게 된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격차를 해소하려면 먼저 학생들의 학습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학습력 진단 위한 평가가 필요하다.”

- 2018년 교육부와 단체협약을 맺었다. 17년 만에 교원 노사가 단협을 체결한 것인데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교원노조법이 1999년 제정되고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 단체협약 체결 뒤 교섭이 중단됐다. 2018년만 해도 교사노조연맹이라고 하면 그런 조직이 있었냐고 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단협 체결 이후 교권 보호 의무화 조치가 시행되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주요 업무가 교육청으로 이관되는 등 효과가 나타나면서 조합원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앞으로 해결할 문제도 여전히 많다. 공무원과 달리 교사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전임자로 활동할 수 있다. ‘교원노조 전임자 허가 지침’을 바꿔야 한다. 또 교원이 전체 국가공무원의 56%를 차지하지만 공무원보수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공무원 보수와 수당을 협상하는 유일한 곳인데 교원이 인사혁신처의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됐다. 이 때문에 교원노조는 임금협상을 전혀 못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대의원 의결권, 조합원수에 비례
민주적 토론 과정 거쳐 한국노총 선택

- 한국노총을 선택했다. 내부에서 논란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심지어 아내도 ‘한국노총에 가면 이혼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조직 내에서 지역별·연령별로 편차가 컸다. 광주전남지역과 40대 후반 50대 초반 조합원들이 반대했다. 반면 20~30대, 40대 초반 조합원은 실사구시 경향을 보였다. 한국노총이 대선에서 DJ를 지지하기 이전 시대를 경험했느냐, 아니냐를 경계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 같았다. 내부 논란이 컸지만 지난 6개월간 민주적 토론을 거쳤다. 86% 찬성률이 그 결과다.”

연맹의 대의원대회 의결방식은 두 가지다. 노동관계법령에 따라 직접·비밀·무기명투표가 필요한 경우 등은 대의원 1인당 1표로 산정한다. 하지만 한국노총 가입처럼 내부 논란이 뜨거운 경우 대의원 1인당 해당 선거구 조합원수만큼 표가 주어진다. 이번 대의원대회는 123명의 대의원들이 전체 조합원수만큼인 3만7천여표를 행사했다. 왜 이런 의사결정 구조를 뒀을까.

“대의원대회가 정파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민의가 왜곡되지 않고, 대의원대회에서 현장 교사의 이해가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는 의결 방법이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 온라인 설문조사나 토론을 통해 전체 조합원 다수의 결정에 따르자고 한 경우 일괄적으로 한쪽에 투표할 수도 있고, 만약 조합원 의견이 7 대 3으로 나왔다면 이에 비례해 대의원도 찬성표와 반대표를 각각 7 대 3으로 나눠서 던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민주적인 토론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한국노총행 결정 이후에도 별다른 후폭풍이 없다.”

김 위원장은 “왜 하필 지금 한국노총이냐고 묻는데,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양대 노총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교조와 교사노조연맹도 이견을 해소해 하나로 가는 게 바람직한 길”이라며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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