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권리 강화와 일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유럽노총(ETUC) 조합원들의 시위 장면.

유럽연합(EU)의 최저임금 입법화 논의가 뜨겁다.

유럽연합은 조약으로 연합 수준의 임금 결정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착취적인 고용 조건의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최저임금 강화 노력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는 게 유럽노총(ETUC) 입장이다. 단체교섭과 더불어 최저임금 인상은 공정한 고용 조건을 달성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유럽노총은 일하면서도 빈곤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비율이 2007년 8%에서 2018년 9%로 늘어난 데 주목한다. 특히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독일·이탈리아·스페인을 포함해 12개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일하는데도 빈곤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돌봄·청소·보건·농업에 종사하는 필수노동자들(essential workers)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유럽노총은 최저임금 도입과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유럽연합 차원의 최저임금 법제화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는 입장이다.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유럽연합 차원의 최저임금법 강화를 지지하면서 유럽노총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마리아나 마주카토와 토마스 피케티를 비롯한 경제학자 16명은 유럽연합집행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적정 최저임금에 관한 유럽연합 지침(an EU Directive on Appropriate Minimum Wage)’을 제정하려는 유럽연합의 제안에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경제위기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임금 주도(wage-led)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단체교섭 강화가 강력하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회복의 필수 요소”라고 지적했다.

서한에서 경제학자들은 유럽연합이 성장과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적정한 최저임금’과 ‘강력한 단체교섭’을 자유로운 시장 기능의 장애물로 거부하던 전례를 돌아볼 때 2020년 10월 유럽연합 스스로 적정 최저임금제를 제안한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격찬했다. 이는 2008~2009년 경제위기 때 최저임금 동결과 단체교섭 약화를 처방한 유럽연합의 행태와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서한에 동참한 경제학자들은 “지난 경제위기의 교훈은 긴축재정과 임금동결로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며, 유럽연합이 제안한 적정 최저임금제야말로 현재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유럽연합 노동자들의 임금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2천500만명을 넘는다. 이 중 상당수는 코로나19 전염병 상황에서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봉사하는 필수노동자들이다. 경제학자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주머니에 더 많은 돈이 들어오면 소비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투자를 촉발시켜 총수요와 경제성장은 물론 생산성과 고용 전반을 촉진시킨다”며 “적정한 최저임금과 강력한 단체교섭은 민중은 물론이거니와 경제에도 좋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 최저임금제 도입에 대한 유럽노총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유럽노총은 유럽연합이 연합 차원에서 구속력을 갖는 법률인 지침(Directive)으로 최저임금제를 다루는 데 동의한다. 또한 이 지침에서 유럽연합이 최저임금 강화와 더불어 단체교섭 촉진을 목표로 하는 것을 환영한다. 지침의 단체교섭 조항과 관련해 유럽노총은 노동조합의 역할을 종업원평의회나 기타 노동자대표로 바꾸려는 사용자들의 시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유럽노총은 최저임금 인상과 생산성 향상을 연동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으므로 지침에서 ‘생산성(productivity)’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소득개선을 위해 국가별로 전체 중간임금의 60%와 전체 평균임금의 50%를 법정 최저임금의 하한선으로 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적정 최저임금에서 ‘적정(adequacy)’은 ‘괜찮은 생활 수준(decent standard of living)’을 보장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유럽노총은 지침에 최저임금에 대한 예외 조항이나 차등 조항 혹은 차감 조항을 두지 말 것과, 최저임금 집행을 감독할 수 있는 법집행 기구를 위한 인력·예산 관련 조항을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국가나 지자체가 공적 자금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나 행사와 관련해 노동조합의 권리를 부정하는 기업에게는 입찰 자격을 주지 않는 조항을 지침에 넣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유럽노총에 따르면,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중에서 21개 나라가 법정 최저임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나머지 6개 나라는 단체협약으로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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