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19세기 세 번의 침략 전쟁 끝에 마침내 미얀마를 정복한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당시 미얀마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카렌족과 벵갈 출신 무슬림 집단인 로힝야 등 소수민족을 활용했다. 적은 수의 영국인 관리와 군인들만으로 많은 수의 버마족과 기타 소수민족들을 장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콘바웅 왕조의 옥좌를 박물관으로 보낸 후 영국은 식민통치에 적합한 형태로 행정 제도를 개편했다. 어차피 영국의 관심은 이리와디강 유역의 비옥한 농토를 제국주의 침략의 식량창고로 만들고, 중국 내륙으로 직접 관통하는 ‘버마로드’를 만드는 것에 있었다. 동쪽 밀림지대에 사는 소수민족들에게 일정한 자치권이 허용된 이유다. 대신 영국은 분할 통치 전략을 택했다. 카렌족에게는 군인이나 경찰 등 말단 관료를 맡기고,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 사람들을 대신 관리하게 했다. 또 벵갈에서 온 고리대금업자들에게는 경제 분할 통치를 맡겼다. 토지를 빼앗기고 고통받았던 사람들은 이중의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식민통치 시기 영국은 미얀마를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으로 만들고 열띠게 석유를 시추했지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가난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48년 가까스로 독립을 쟁취한 이후 버마족 사람들은 소수민족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어려웠다. 언제나 극한경쟁은 우리 안의 적대를 유인하기 마련이라서 로힝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학살로 재생산됐다. 군부는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더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소수민족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민주화 세력도 이에 대해 그리 높은 열의를 갖지 않았다. 로힝야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선대의 갈등으로 인해 정반대의 방식으로 고통받았다. 버마족 일부가 로힝야 박해에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이번 군부 쿠데타 이후부터다.

홍콩에서도 영국은 대륙의 정치적 혼돈과 전쟁을 피해 온 한족 디아스포라들을 몇 개의 계급으로 분할해 통치했다. 영국인들을 비롯한 서구 백인들이 홍콩을 정치·경제적으로 지배했다면, 그 아래에는 한족 엘리트들이 있었고 다음엔 식민 도시의 말단 관료를 자임한 앞잡이들이, 가장 밑바닥에는 대다수 가난한 노동자와 상인들이 있었다. 1925년께 홍콩을 방문했던 당대 최고의 작가 루쉰은 이 도시를 일컬어 “하나의 섬에 불과하지만 중국 모든 도시의 현재이자 미래”라고 묘사했다. 아시아에 자본주의를 이식하는 첨단 도시였던 홍콩의 불평등과 식민성을 통해 머지않아 중국 전역도 이렇게 될 것이라 예언한 셈이다. 오늘날 중국 사회의 불평등과 자본주의적 착취를 보면 루쉰의 예언이 가히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스미디어가 말하듯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홍콩 사회는 과연 중국화됐는가? 영국식 식민통치를 중국식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배계급이 서양 백인 자본가 대신 홍콩의 부동산재벌과 대륙 자본가, 중국공산당 엘리트들로 바뀌었을 뿐 밑바닥의 현실은 전혀 다르지 않다.

미얀마와 홍콩의 식민주의는 21세기에도 주인만 바뀌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동아시아 전역이 공유하는 이런 식민성과 무관할까?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 공공기관의 일부 공채 입사자들 중에는 자사 비정규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이나 자회사 전환 문제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역대 정부들은 좋은 일자리를 축소하고 각자도생의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에 일조해 왔고, 친기업 보수언론들은 사실을 기만하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칼춤을 춘다. 불행히도 공공기관의 합격주의자들은 자기보다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비정규 노동자나 자회사 직원들의 처지가 자신들에 준하는 수준으로 개선되는 것이 자신들의 ‘합격’을 향한 여정에 먹칠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 노동조건 격차를 어느 정도 좁혀야 한다는 목소리를 ‘불공정’으로 치환해 버린다. 자신들이 시험공부 하느라 고생한 시절은 한없이 애틋해 하지만, 자회사와 하청·계약직 등 사회구조적 불평등이 낳은 대다수 노동자의 ‘불공정’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다. 경쟁이 덜하고 좋은 일자리가 늘어야 시험 경쟁의 고통도 줄어들 수 있지만, 애써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어 보인다.

더구나 이는 우리 안의 분할 통치를 강화해 달라고 촉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기업 안에서 노동 현장이 분할돼 있으면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수월하게 노무관리가 가능하다.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본사나 자회사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해당 노동조합들이 임금의 정액 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 등 동일한 요구안을 갖고 뭉치기 어렵게 할 수 있다. 본사 노동자들에겐 약간의 떡고물을 주고, 자회사 노동자들에겐 본사 노조나 고정된 예산을 핑계로 불안정한 상태를 강요할 수 있다. 가령 경영상 위기를 겪고 있다는 MBC의 경우 본사 노조는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력과 협상력을 갖고 있지만, 자회사 동료들이나 계약직 노동자들의 처지에는 거의 무관심하다. 아무리 자회사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어도 남의 일로 여길 뿐이다. 하물며 자회사 전환을 반대하는 본사 공채 입사자들이라고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러니 이를 딱히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합격주의자들의 나르시시즘은 가히 식민주의적 퇴행이라 할 만하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젊은 시절 버마에서 제국의 경찰로 일하며 느낀 바를 묘사한 소설 <버마시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에게는 천성적으로 협잡꾼과 거짓말쟁이가 되어 밤낮으로 우리 스스로를 정당화하라며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괴롭히는 기질이 있소.” 우리라고 딱히 다르겠는가. 식민지는 멀리 있지 않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