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하며 삼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로 구성된다. 이때 입법부 역할을 하는 게 국회다. 우리는 해방 후에 비교적 순조롭게 국회를 설치했는데, 그건 서양과 일본 등에서 먼저 만들어 시행하던 민주주의 제도를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국회운동(國會運動): <정치> 국회의 설치를 요구하는 민중 운동.

듣도 보도 못한 말이고, 풀이에 나온 뜻대로 이런 용어를 사용한 예를 찾지 못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국회를 설치하라는 요구를 내건 운동을 펼친 적이 없다. 그렇다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國會開設運動 : 國會の開設を要求した民衆運動. 1874年(明治7)板垣退助らによってなされた民撰議院設立の建白に始まる. しばしば政府はこれを彈壓したが、81年10月12日國會開設の詔勅を下した. →國會期成同盟→自由民權運動.

(번역) 국회의 개설을 요구한 민중운동. 1874년(메이지 7년)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 민선의원 설립의 건의로 시작된다. 종종 정부는 이것을 탄압했지만, 1881년 10월12일 국회 개설의 조칙을 내렸다. →국회기성동맹→자유민권운동.

일본어사전에 있는 것처럼 ‘국회개설운동’이라고 하면 쉽게 알아들을 텐데 왜 중간을 잘라먹고 어설픈 줄임말을 썼는지 모르겠다. 일본어사전의 풀이 뒤에 참조어로 국회기성동맹과 자유민권운동을 제시했다. 기성동맹이 국어사전에 있다.

기성동맹(期成同盟)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조직한 동맹.

일본에는 다양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든 기성동맹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국회 개설을 목표로 만든 국회기성동맹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도 몇몇 기성동맹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해방 후에는 그런 명칭을 쓰지 않았다. 자유민권운동은 메이지 시대에 국민이 국회 개설과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던 정치운동을 일컫는 용어다.

국회와 관련해 표준국어대사전이 싣고 있는 용어 몇 개를 살펴보자.

원외운동(院外運動) : <정치> 선거인들이 특정한 법률의 제정에 대해 선출 의원에게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벌이는 운동.

원외투쟁(院外鬪爭) : <정치> 국회 밖에서 하는 정치 투쟁. 시위나 청원 따위가 있다.

원외단(院外團) : <정치> 의사당 밖에서 의원이 아닌 정당원으로 구성된 단체.

원외운동과 원외투쟁의 풀이가 다소 다르지만 내용상으로는 비슷한 말이다. 원외투쟁 풀이에 청원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건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이 하는 일이다. 일본어사전에 원외운동은 표제어에 없지만 다른 두 낱말은 실려 있다.

院外鬪爭 : 國會の外で行なわれる大衆の政治活動. デモ, 請願など.

(번역) 국회 밖에서 행해지는 대중의 정치 활동. 시위·청원 등.

院外團 : 國會議員以外の政黨員で構成する集團.

(번역) 국회의원 이외의 정당원으로 구성된 집단.

원외단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아니며, 일본에서 사용하는 원외투쟁도 우리가 사용하는 원외투쟁의 개념과는 다르다. 언론에 나오는 기사를 보자.

“미래통합당이 176석 더불어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해 원내투쟁을 넘어 원외투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인해전술을 무기로 본격적인 입법 독주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에 더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다.”(시사위크, 2020년 7월29일자)

같은 기사의 뒷부분은 이렇게 돼 있다.

“주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장내·외 투쟁을 병행하되 장외투쟁 방법은 구체적으로 더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원외투쟁은 국민이 하는 대중투쟁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벗어나 벌이는 투쟁이고, 국회 안에서 하는 투쟁은 원내투쟁이라고 한다. 하지만 원내투쟁이라는 말은 국어사전 안에 없다.

장외투쟁(場外鬪爭) : <정치> 국회 밖에서 하는 정치 투쟁. 시위나 청원 따위가 있다.

원외투쟁과 같은 뜻으로 풀었는데, 역시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장외투쟁의 상대어는 장내투쟁인데, 이 말도 국어사전 안에는 없다. 우리 용법이 아닌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법을 가져다 놓고 우리 국어사전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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