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은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정책부장

지난해 11월27일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지역공공간호사법안은 코로나19와 싸우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현장 간호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간호사 부족 문제를 두고 간호사에게 족쇄를 채우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법안은 다음과 같다. 간호대학에 지역공공간호사 선발전형을 두고 선발된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되, 의료인 면허 취득 후 5년간 특정 지역의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하게 하고 의무복무 위반시 지급받은 장학금 반납과 의료인 면허 취소, 일정 기간 재교부 금지가 따른다. 이 법안을 전제로 보건복지부는 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2021~2025년)에 지역공공간호사제를 포함시키고 2023년부터 250여명 내외의 지역공공간호사를 배출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코로나19 이후 1년반 동안 간호사가 겪는 열악한 처우와 상황이 연일 보도됐다. 특히 최연숙 의원이 직전까지 근무했던 대구 동산병원은 간호노동의 열악한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곳이다. 간호사 출신 의원이 간호사에게 또다시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며 헌신할 것을 강요하는 법안을 내다니 처참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신규 간호사 중 45%가 1년 안에 사직하고, 면허 간호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의료현장을 떠난다. 이렇게 많은 간호사가 현장을 떠나는 이유는 심각한 노동강도로 인해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한국의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비교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급 간호사들은 미국보다 약 3배 이상의 환자를, 병원급 간호사들은 무려 8배 이상의 환자를 본다고 알려졌다. 아픈 환자의 손 한번만이라도 더 잡아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간호사가 된 이들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환자수에 허덕이다 환자를 충분히 간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현장을 떠나고 있다.

그런데 지역공공간호사법안은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는 원인을 먼저 해결하기보다는 일단 간호사를 보내 놓고 생각하자는 발상으로부터 시작했다. 간호사에게 면허취소라는 협박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게 만드는 이 법은 오히려 간호사 처우개선을 가로막는 법이 될 것이다. 병원이 간호사를 유치하기 위해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아도, 5년 동안 도망가지도 못하고 일할 간호사들을 정부에서 매년 보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 병원에서 50%가량이 5년차 미만 간호사로 채워져 있는 현실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병원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오래 일할 간호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젊고 튼튼한 간호사들의 5년 의무복무, 이후에 자동적인 수급을 보장해 주는 법안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간호사를 어떻게 양성해 지역에 배치할 것인지, 그것도 높은 간호의 질을 담보하면서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근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중차대한 문제에 지역공공간호사법안이 제기하는 면허취소와 의무복무는 정답이 아니다.

대안은 너무나 명확하다. 간호사가 병원 현장에서 떠나는 원인을 바꾸면 된다. 바로 처우를 개선하고 1인당 환자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먼저 2018년 보건복지부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권고사항을 의무사항으로 바꿔야 한다. 대책을 통해 발표된 간호사 처우개선 가이드라인은 간호관리료 70% 이상을 간호사 직접적 인건비, 처우개선 간접비용 등으로 사용하도록 고지했다. 한편 간호사 야간근무 가이드라인을 통해서는 야간간호료 수가의 70% 이상을 교대근무 간호사의 야간근무에 대한 보상강화를 위한 직접 인건비로 사용할 것을 고지하는 한편, 야간근무시 지켜야 할 각종 수칙을 정리해 권고했다.

그러나 의료연대본부 산하 16개 병원 실태조사 결과 수당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병원에 간호사를 대상으로 수가를 사용하라고 했지만, 간호사들은 자신이 직접 대상자인지도 모르고 있다. 병원이 수가를 간호사 처우개선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노동조합과 논의하거나 간호사 의견을 반영한 곳은 거의 없었다. 복지부는 시행한 지 2년이 다 돼 가는 수가지원과 관련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모니터링하고, 위반시 강력한 제재와 불이익을 줘야 한다. 실제 간호사 처우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복지부에서 제시한 야간근무 시간, 월 야간근무 횟수, 건강권 보호 등 야간근무에 대한 9개 기준도 현장조사 결과 병원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이 확인됐다. 권고사항을 의무사항으로 변경해야만 병원에 강제성이 부여돼 야간근무하는 간호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이미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한 곳이 많다. 간호인력 확보수준이 환자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각종 연구 결과로 이미 확인됐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는 특정 병동(중환자실 등)에 간호사 1명이 봐야 하는 환자수의 하한 기준을 법제화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주 빅토리아주는 모든 병동 하한 기준을 법제화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력부족으로 인해 간호사들이 너무나 높은 노동강도로 결국 사직을 선택하고, 이것이 인력부족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놓였다. 악순환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지역공공간호사법안처럼 간호사를 억지로 병원에 묶어 두는 법안이 아니라,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적으로 제한해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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