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는 ‘조국 대전’의 시발점이었다.

박정희 개발연대의 막차를 탔던 386세대는 ‘3저 호황’의 끝물에 기대어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손쉽게 직장을 얻었다. 한때 노동운동 현장에 투신했던 386 운동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91년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자마자 엑소더스처럼 빠져나와 교수로, 변호사로, 정치권으로, 시민단체로 마구 진출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엔 이런 자들이 한데 모였다. 대안이 없었다. 해방 이후 매판자본에서 출발해 독점자본으로 치달았던 기존 집권세력과 겉으로 보기엔 대척점에 서 있었으니, 두 정부는 당연히 386을 개혁의 불쏘시개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으론 개발연대 세력과 동일한 DNA를 지녔다. 그래서 두 정부 시절 386은 개발연대 세력과 협업해 정권을 운영했다. 좌회전 신호를 넣고, 우회전하는 방식으로.

다시 20년이 흐른 뒤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386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달리 우회전 신호를 넣고, 우회전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정부에 들어간 386은 쌓아 놓은 돈은 있지만 주식 투기도, 부동산 투기도 할 수 없는 처지다. 그 사이 부쩍 높아진 국민 눈높이가 이를 용인하지 않아서다. 그러다 보니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 같은 사모펀드 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모펀드 피해자가 수천·수만 명에 달하고 피해액도 수조 원에 달했지만, 수많은 기자들이 ‘조국 대전’ 이전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왜? 레거시 미디어 안에서 의사결정권을 쥔 기자 대부분이 집권 386들과 과거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으니. 그래서 사모펀드를 처음 들어 봤다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거짓 해명에 감정이입하기도 했다.

제법 진보매체 흉내를 내는 언론조차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힘겹게 내민 제보를 ‘검찰 개혁’의 불쏘시개로만 사용했다. 거대한 야바위 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깡그리 지운 채 ‘검찰이 엉터리 수사’를 했다는 쪽으로만 파고 들었다. 반대로 보수언론은 사모펀드를 조국 때리기 도구로만 활용했다.

언론이 검찰과 경찰의 수사에서 정치적 레토릭만 찾아내 양극단으로 확장 편향을 부추기는 사이 사모펀드 피해자들의 절절한 사연과 가해자들의 끔찍한 가면은 제대로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한바탕 ‘수사놀이’가 끝나고 그나마 비교적 실체적 진실의 얼굴이 드러나는 재판이 진행되는데도, 언론은 안중에도 없다. 사회면 구석에 1단 기사라도 실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18일 라임자산운용의 투자금을 유치하려고 이종필 라임 전 부사장 등에게 뇌물을 주고, 회삿돈 18억원을 빼돌린 김정수 리드 회장에게 징역 6년에 추징금 25억원을 선고했다. 또 라임펀드의 몸통으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짜고 수원여객 회삿돈을 횡령한 재무이사에겐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경제사범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는 우리 법원이 사모펀드 주변부 인물들에게 징역 6년·8년씩 판결할 정도면 엄청난 중범죄인데도, 한겨레와 경향신문 지면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다. 검경의 수사 태풍이 휩쓸고 가 적막만 감돌지만,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만난 60대 노점상은 30년을 군고구마와 붕어빵을 팔아 모은 6천만원을 투자했다가 날렸다. 42년 교편을 잡았던 70대 할머니는 남편이 죽고 남은 두 아들의 결혼비용으로 아껴 뒀던 퇴직금 4억원을 연리 4%의 이자를 준다는 말에 속아 모두 날렸다. 이런 사연을 가진 피해자가 수만 명에 달하는데, 어떤 언론도 주목하지 않는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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