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재석 공공노련 상임부위원장

지난해 11월1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에서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노정 합의를 이뤘다. 노정 합의에 이르기까지 노동계와 정부(기획재정부) 간의 끈질긴 줄다리기가 있었기에, 노동계는 경사노위에서 합의에 도달하면 국회 통과는 무난하리라는 기대에 벅차 있었다.

당시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김경협·박주민·김주영 의원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였다.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협의회(약칭 한공노협, 공공노련·금융노조·공공연맹)에서는 오랜 논의 끝에 발의된 세 법안 중에서 원안가결이 가능한 ‘비상임 노동이사 1명 포함’ 입법안을 선정하고, 2월부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들에게 제도를 설명하며 입법을 촉구했다.

노동이사제는 과반수 노조나 직원들이 추천하는 직원이 이사회에 참석해 경영 현안에 대해 조합원의 입장을 대변하고 논의함으로써 공공기관의 투명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다. 이미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7년부터 서울특별시를 포함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입했다. 이렇듯 국내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이룬 ‘사회적 합의사항’인데도 국회는 입법에 소극적이다.

여당은 노동이사제가 대통령 공약사항이고 국정과제인데도 법안처리 절차를 핑계로 미루고 있다. 또한 야당은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까지 확대하는 것을 우려하는 경총을 대변하며, 강성노조가 있는 조직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노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므로 노동개혁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되짚어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궤변이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적용 대상은 공공기관운영법을 적용받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132개 기관이다. 민간기업의 경우 상법이 적용돼 주주총회 의결을 받아야 노동이사제 도입이 가능하다. 공공기관에서 도입하더라도 민간기업 영역까지 확대하진 않는 것이다. 또한 공기업은 이사회가 15명으로 구성돼 있으므로 비상임 노동이사 1명이 추가되더라도 이사회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경총과 야당의 반대 논리는 그동안 이사회가 밀실에서만 이뤄졌다는 반증이다. 비상임 노동이사 1명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왜 두려워하는가? 노동이사제 도입 찬반을 논하기 전에, 왜 경사노위 합의 사항에 대해 국회가 반대하는가 하는 원천적인 의문이 생긴다. 몇몇 의원은 입법의 주체는 국회이기 때문에 경사노위 사회적 합의사항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한다. 이는 명백하게 사회적 대화를 무시하는 처사이자, 아직까지도 사회적 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국회가 입법권이라는 무기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 합의사항을 그저 ‘참고사항’ 정도로 여기는 행태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대통령 직속기구로서 이해당사자가인 노·사·정이 참여하는 경사노위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에 따라 운영되므로 경사노위에서 합의된 사항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투표와 선거’라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입법권을 부여받은 국회는 경사노위의 사회적 합의를 인정해야 한다.

공공기관운영법 소관부처인 기획재정부 또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합의에 책임을 지고 방관자 입장에서 벗어나 책무를 다해야만 한다.

경사노위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합의한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앞으로 경사노위는 복잡성과 다양성이 증대하는 현대사회에서 더욱더 상호의존적이고 첨예한 사회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긴 사회적 대화 끝에 도달한 합의가 입법과정에서 좌초한다면 앞으로 누가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겠다고 나설 것인가? 사회적 대화의 산물인 사회적 합의가 무시되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며, 희망이 없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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