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 보기드문 풍경이 펼쳐졌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공단의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를 압박하며 단식을 시작했다가 3일 만에 중단했다. 비정규직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문제를 모두 보여줬다는 평가다. 건강보험공단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의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돼야 할까.

김용익 이사장이 결단해야 할 때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이달 10일부터 전면파업을 하고 김용익 이사장과의 만남을 요구하며 공단 로비농성에 들어갔다. 김 이사장은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는 대신, “파업을 중단하라”며 농성 공간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이사장은 정규직 노조에도 ‘민간위탁사무논의협의회 참석’을 요구했지만, 그가 선택한 공간은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농성장이었다. 파업 중단을 직접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수 차례 요구해도 고객센터 노동자들과의 대화를 회피하던 이사장이, 만나 달라는 노동자들 바로 앞에서 단식을 하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김용익 이사장은 단식에 들어가면서 “이사장으로서 두 노조가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다했으나 대립만 깊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치 문제의 핵심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인 것처럼 보인다. 김 이사장은 고객센터의 직접고용 문제가 풀리지 않는 원인이 ‘노·노 갈등’에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자신을 갈등의 중재자로 위치지웠다. 그런데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건강보험공단 사측을 상대로 파업을 했으며, 이사장에게 직접고용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요구에 일체 답하지 않아서 파업을 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공단 이사장이었다.

이번 고객센터 노동자 파업의 핵심은 ‘건강보험공단의 공공성’이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은 가입자의 권리와 직결돼 있다. 건강보험료가 많이 나오거나 체납 등 문제가 생길 때,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가입자들은 충분히 상담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민간위탁 업체들이 실적 때문에 상담사에게 3분 이내에 전화를 끊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가입자들은 고객센터에서 내 정보를 모두 열어 보면서 상담을 하지만, 공공기관이 내 정보를 잘 관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간위탁업체가 나의 민감정보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공적 업무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김용익 이사장은 단식에 들어가며 “이사장으로서, 그리고 복지국가를 만드는 노력에 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건보공단이 파탄으로 빠져드는 일만은 제 몸을 바쳐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현재 건강보험 자격·보험료·보험급여·건강검진·의료급여·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세부업무와 4대 사회보험 징수통합과 관련된 업무 등 총 1천69개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006년 고객센터를 민간위탁하기 전까지 정규직이 담당했던 업무이다. 김용익 이사장은 건강보험공단의 업무가 민간에게 떠넘겨져 있는 이 현실이 건강보험공단의 파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김 이사장은 가입자의 소중한 정보가 민간업체에 의해 다뤄지고, 가입자들이 충분히 상담을 받을 권리가 훼손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답해야 한다. 그 답을 해야 하는 주체는 정규직 노동자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아닌 김용익 이사장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고객센터의 직접고용 여부를 논의하는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를 구성해 진행하고, 정규직 노조가 참여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노조도 참여할 수 없다고 하면서, 주체인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참여를 가로막아 왔다. 김용익 이사장은 중재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며 공단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사람이다.

김용익 이사장이 단식을 하자, 정규직노조는 입장을 바꿔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고객센터 직접고용에 반대하며, 협의회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바꾼 것이다. 파업 중이던 고객센터지부도 현장 복귀를 염두에 두고 조합원 토론을 하고 있다. 김용익 이사장은 3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김용익 이사장이 양 노조를 끌어내서 대화 테이블에 앉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객센터 직접고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합의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건강보험공단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김용익 이사장이 고객센터 직접고용을 결단하는 것이다.

 

기관장은 결자해지, 두 노조는 끈기 있게 협상해야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단식농성으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를 동시압박한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오죽하면 사용자 지위에 있는 분이 초유의 단식을 결단했을까. 저간의 사정이 궁금해졌다.

살펴보니 1년여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가 공전하면서 지체됐다. 이를 방치한 공단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비정규직 당사자인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가 결성된 이후엔 정규직 노조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니 또 뒤엉켰다. 가장 절박한 당사자인 비정규 노동자만이라도 참석해 협의회를 차근차근 정상화할 방도를 찾았어야 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이후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상생과 연대가 넘실거리는 일터 만들기는 불가능한가. 내 몸의 가장 아픈 부위가 중심이다. 지금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이 공단의 가장 아픈 부위다. 현 시점에서 공단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목표는 콜센터 노동자들과 상생할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비대면 응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콜센터를 직접운영하고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공공기관 공공성을 강화하는 핵심 방안이기도 하다. 김용익 이사장은 단식의 결기로 직영화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각자 홍역을 치렀으니 현장에서는 만만찮은 이견과 쟁점이 난무할 것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공단 기관장의 역할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이 지향해야 할 불평등 극복과 사회공공성 강화의 출발점은 자신이 발 딛고 일하는 일터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막론하고 정규직 노조의 비토 파워가 거세지는 형국인 만큼,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에 참여를 결정한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의 행보에도 주목한다. 고객센터지부와는 공공운수노조라는 한 지붕을 인 가족이니, 현실적인 제약조건을 고려한 합리적인 정규직화 방안에 대해 숙고하고 끈기 있게 협상해야 한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예단과 포기는 금물이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각 노조 주체가 대화와 끈기 있는 협상으로 기관장의 의지를 확인하면서 협의회에서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역할해야 할 때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단계적인 방안도 염두에 두고 고용안정을 우선하되 세밀하게 처우 개선도 동반해 진전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수 차례 비정규직 정규직화 심의위원회에 참여해 겪은 씁쓸한 경험을 냉철하게 반추해 보면서, 한국 사회가 경쟁 논리와 시험주의 이데올로기가 일터 구석구석까지 내면화된 신자유주의 사회경제구조로 변했음을 절감한다. 사업장 단위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공공부문에서마저도 볼썽사나운 노노갈등 양상으로 회귀되고 있고 사용자가 적당하게 발뺌하기 좋은 구조가 만들어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사례는 그 정점의 몇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 속으로 내던져 버릴 것인가.” 양자택일을 일상에서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질서에 맞서 노동운동이 가장 힘겨운 처지의 노동자들을 살리는 활인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고역을 치르고 있는 노동현장에서 민낯을 드러낸 신자유주의 현실을 극복하는 대안노동운동이 절실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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