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우리나라 노동법 체계 아래에서는 노동조합만이 회사와 근로조건을 협의하고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달리 말하면 개별 노동자들은 안타깝지만 회사와 임금과 휴일·휴가 등 근로조건에 관해 협의할 권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노조가 없는 대다수 회사에서는 어떨까. 사용자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이미 결정된 근로조건을 실행하거나 변경하는 경우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근로자대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할 경우처럼 고용상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에게 해고 기준 등을 50일 전에 통보해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 또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행이나 휴일근로나 연장근로에 대한 수당 대신 보상휴가를 주는 경우처럼 초과수당을 회피하려고 하는 경우에도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꼭 해야 한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대표 규정은 참으로 이상하다. 근로조건 변경이나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하도록 정해 놓고서는 근로자대표가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지, 어떻게 뽑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그래서 산업현장에서는 회사 사장이 지목한 간부사원이 근로자대표랍시고 연차휴가 대체나 보상휴가제 시행 등 굵직한 근로조건 변경 사항에 동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심지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는, 노무관리를 담당하는 인사팀장이 근로자대표로 서면합의를 해 노동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연차휴가 대체제도를 시행하는 곳도 있다.

사장님 뜻에 충실한 간부사원이 현장 노동자 의견을 반영하는 서면합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런 현장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에 제대로 근로자대표에 관해 의미를 규정하고 선출 방식과 지위를 보장해 제도화해야 한다.

다만 근로기준법은 ‘경영상 해고’ 관련 사안에 한해 ‘근로자대표’의 의미를 규정했다. 근로기준법 24조3항에 따르면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을,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근로자대표로 본다. 그러나 여전히 근로자대표 선출 방법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없다.

최근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회사 입장에서는 재택근무 등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시행의 합의 주체인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선출과 지위보장 등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장 노동자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근무형태나 초과수당 지급방식을 변경하는 데 중요한 법적 결정권을 가진 근로자대표가 민주적으로 선출돼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지난해 10월 ‘근로자대표제도 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을 통해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선출절차와 방법을 보장하고 지위 및 활동보장, 불이익 취급 금지 등의 원칙을 정해 합의한 바 있다. 이를 시급하게 입법해 노동현장에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사용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자격 없는 사람을 주먹구구식으로 근로자대표로 내세워 현장 노동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현재 한국노총은 근로자대표의 권한과 선출절차와 방법 등을 규정한 ‘근로자대표제 및 노동자경영참가법률’ 제정을 하반기 주요 입법과제로 추진 중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계 의견을 수렴해 지난 4월20일 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사업장 노동자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 방식으로 근로자위원을 선출하고 이들이 모여 근로자대표 역할을 맡도록 하며 선출에 사용자가 개입하거나 방해할 경우 벌칙을 부과해 근로자대표 선출의 민주적 절차를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대표 활동에 필요한 자료 요구권, 근로자대표에 대한 사용자의 불이익 취급 금지, 근로자대표 활동에 개입 방해시 벌칙을 신설해 근로자대표 지위 및 활동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 사안이다.

나아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근로자대표가 노사공동위원회를 통해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 기업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자 한다. 아무쪼록 하반기 국회에서 입법화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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