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다솜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지난해 5월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뒤 단 며칠 만에 관련 확진자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150명을 넘어섰다. 최초 확진자는 5월23일에 발생했지만, 노동자들은 이틀 뒤인 25일 오후까지 일을 했고 저녁에서야 사업장은 폐쇄됐다. 안일한 대처로 코로나19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있었고,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집단감염뿐만 아니라 여러 열악한 노동환경이 드러났다. 코로나19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비정규직 고용구조 등 노동조건 개선 요구에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 지원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법률원도 대책위원회에 참여해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산업재해신청을 지원했다.

코로나19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준비한 설명회에서 업무 수행으로 인해 코로나19에 감염된 경우 산재를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산재신청 자체보다도 코로나19로 인한 후유증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경제적 보상만이 산재신청의 이유는 아니겠지만, 정부 차원에서 치료비나 입원 등 격리기간의 급여 지원이 있었기에 당장의 실익은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설명회에서 코로나19가 산재로 승인되면 이후 후유증에 대해서도 산재로 신청해 볼 수 있고, 산재 은폐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산재신청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산재를 신청했던 피해자들은 코로나19를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았고, 이후 후유증에 대한 문의들이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피로·설사·근육통·관절통·두통·탈모 그리고 정신질환까지 다양한 후유증상을 호소했다. 설명회에서 산재신청의 의미를 설명할 때는 후유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문의가 들어왔을 때 후유증이 추가상병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확언하지 못했다. 공통된 코로나19 후유증상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면서 여러 연구논문이나 기사가 발행됐지만, 피해자들의 주치의도 코로나19와 후유증상 간의 의학적 인과관계에 대해 명확히 답변해 주지 못했고, 그간 근로복지공단의 추가상병 판단 경향도 피해자들의 신청을 주저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위원회는 코로나19 후유증에 대해 추가상병 신청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한 분만이 추가상병 신청에 응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업무상재해로 발생한 부상이나 질병이 원인이 돼 새로운 질병이 발생해 요양이 필요한 경우 이를 ‘추가상병’으로 보고 요양급여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기존에 산재로 인정된 부상 또는 질병이 새로 발생한 질병의 ‘원인’이 됐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의학적 인과관계’인지 최초요양과 동일한 ‘법리상 상당인과관계’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때 그 판단기준이 의학적·자연과학적 명백한 인과관계라는 법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법원은 산재보험법 취지에 따라 최초 요양뿐만 아니라 추가상병에 대해서도 법리상 상당인과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즉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사실에 의해 일정한 개연성이 추단될 정도로 입증되면 족하다는 규범적 관점에서 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아닌 자문의사회를 통해 의학적 인과관계를 기준으로 추가상병을 판단해 왔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후유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의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주치의의 말에 선뜻 추가상병 신청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지난달 말 근로복지공단은 코로나19 감염 후 발생한 정신질환을 추가상병으로 승인했다. 정신질환이 다른 후유증에 비해 비교적 사실적 입증이 수월하고 의학적 인과관계 기준에도 부합했기에 가능한 결과였을 것이다. 만약 정신질환이 아닌 다른 후유증을 추가상병으로 신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질문을 바꿔 보자. 만약 근로복지공단이 의학적 인과관계가 아닌 법리상 상당인과관계를 기준으로 추가상병을 판단했다면 코로나19 후유증에 대한 추가상병 신청자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애초 코로나19를 산재로 신청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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