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대상판결 : 청주지방법원 2021. 5. 13. 선고 2020나10528 판결

1. 이 사건의 경과

가. 고 이재학 PD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약 14년 동안 주식회사 청주방송(이하 ‘피고’)에서 소위 ‘프리랜서’ AD(고인은 입사 이후 얼마 동안은 FD로 근무했으나 대상판결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AD로 판단했다)와 PD로 근무했다. 고인은 2018년 4월 급여 인상과 인력충원 등 같은 프리랜서 동료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피고로부터 해고당했다.

나. 이후 고인은 직장갑질119에 고충을 호소했고 상담을 거쳐 부당해고 확인(노동자지위확인)과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다. 1심 소송은 피고의 자료 은폐(대표적으로 재직 중 고인에 대한 노동자성을 확인한 노무법인의 컨설팅 자료의 제출 거부)와 허위 주장, 피고 회사의 고인 동료들에 대한 진술 번복 강요, 위증 등으로 점철됐고(진상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이에 편승한 재판부는 고인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라. 고인은 1심 판결문 수령 다음날 곧바로 항소했으나 결국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5일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고인의 부모님(이하 ‘원고들’)이 소송을 수계해 항소심을 이어갔다. 항소심에서는 고인의 사망으로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청구만 다투게 됐으나, 그 전제가 되는 쟁점은 결국 고인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여부라는 점에서 1심 판결의 쟁점과 다르지 않았다. 대상판결은 고인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해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인용했다.

2. 판결의 요지

가. 1심 판결(청주지법 2020. 1. 22. 선고 2018가단31613 판결)의 요지

1심(판사 정선오)은 ① CP나 PD는 정규직이, AD는 프리랜서가 담당하는 것이 방송현장에서 일반적이라고 전제하면서, ② 고인은 정규직 입사 과정을 거쳐 입사한 것이 아니고 피고 회사에서 프리랜서 AD로 일을 시작해 오랜 기간 AD로 일을 한 점, ③ 고인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 출·퇴근할 의무가 없고 지각 또는 결근 등에 대해 징계 등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휴가 등에 있어서도 취업규칙을 적용받지 않는 점, ④ 고인은 보조금 업무와 협업 등을 하고 일부 피고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았으나 이는 고인이 제작에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제작에 필요한 부수적 범위에 그칠 뿐 피고 회사의 전반적 업무에 걸쳐 지속된 것은 아닌 점, ⑤ 고인이 명함 등에 PD로 기재돼 있으나 예산 내역서 등에는 AD로 기재돼 있고, 피고 회사가 고인에게 근무장소와 각종 장비 등을 제공했으나 이는 업무 편의를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사정만으로 종속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 ⑥ 타 방송사나 다른 일을 함에 있어 피고 회사의 통제나 금지가 없었던 점, ⑦ 촬영 횟수에 따른 보수를 받았을 뿐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일체의 보수가 없고, 2014년에는 보수 자체가 없었으며 매번 보수액의 격차가 큰 점, ⑧ 4대 보험 미가입과 근로소득세 미징수, 사업자로서 부가세 등을 납부한 점 등을 종합해 고인은 피고 회사의 노동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청구를 기각했다.

나.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고인이 2004년 6월께부터 2018년 4월께까지 피고 소속 PD나 국장이 제안하면 정규방송·특집방송·행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여 조연출 또는 연출 업무를 수행한 점, 피고 직원의 요청이 있는 경우 고인이 담당하지 않는 프로그램의 편집 작업도 수행한 점, 고인은 피고 소속 정규직 PD나 기술감독·카메라팀 직원 등과 협업을 했고, 방송촬영 및 편집 업무 이외에도 보조금이 지원되는 방송프로그램과 관련된 각종 문서 작성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의 협의 등 행정 업무도 수행한 점, 고인은 피고의 기획 의도나 방침에 따라 피고의 지휘·감독하에서 이와 같은 업무를 수행한 점, 고인이 직접 피고의 결재문서를 기안하기도 하고 피고의 대외 공문이나 방송 스크롤·구성안·각종 문서에 고인은 피고 소속 PD로 기재됐으며 대내외적으로 고인을 피고 소속 PD로 인식한 점, 고인은 일정 기간 또는 매주나 매일 방영되는 각종 프로그램의 제작을 위해 거의 매일 야외나 실내에서 촬영·녹화 및 편집·준비 회의와 섭외 등의 업무를 했고, 편집실 선점과 국장에 대한 보고를 위해 대체로 오전 7시경 출근했으며, 정규직과의 협업 등에 따라 근무시간의 구속을 받았고(근무시간에 일부 탄력적인 부분은 업무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이런 사정은 정규직 PD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촬영은 외부나 스튜디오에서, 편집은 피고의 편집실에서, 행정 업무는 정규직과 같은 사무실에서 수행하는 등 근무장소도 임의로 정할 수 없었던 점, 고인은 외주제작과 달리 인건비만 수령했을 뿐 제작비나 장비·인력 등은 일체 피고가 제공했고 고인이 해야 할 업무를 3자에게 대행토록 할 수 없는 등 고인에게는 사업자적 요소가 부재한 점, 고인은 약 14년 동안 피고 회사에서만 근무하고 수입도 거의 전적으로 피고에게 의존하는 등 근로제공의 계속성과 전속성이 인정되는 점, 고인이 수령한 보수는 업무수행 결과나 성과와 무관하게 노무제공에 따른 인건비로서 근로의 대가인 점 등을 종합해 고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나아가 고인이 동료들의 인건비 인상 등을 요구하자 피고가 고인을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판단했다. 대상판결은 피고의 상고가 없어 확정됐다.

3. 유사 사건 판례(정)의 동향

법원은 방송제작현장의 소위 프리랜서들에 대한 노동자성 판단에서 업무수행상 일정한 재량을 업무 자체의 특성이나 전문직의 상대적 자율성으로 파악해 이를 불리한 징표로 평가하지 않고, 정규직과의 유기적 협업을 노동자성의 긍정적 징표로 보는 등 업무의 특성 등을 고려한 판단을 하고 있다(MBC 프리랜서 PD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두19390 판결, KBS VJ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2011. 3. 24. 선고 2010두10754 판결, KBS FD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0다27671 판결, 교통방송 객원 PD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서울행정법원 2017. 12. 7. 선고 2017구합58731 판결(확정), 피고 회사 AD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서울행정법원 2013. 10. 10. 선고 2013구합7810 판결(확정) 등 참조). 나아가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MBC 사건에서 이와 같은 판례 법리에 따라 구성작가의 노동자성을 처음으로 인정하기도 했다(중앙2020부해1744·1865).

4. 대상판결의 의미

대상판결은 아래와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근무실태의 실질을 중심으로 방송사 ‘프리랜서’ PD의 노동자성을 다시 한번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심은 고인이 정규직 입사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점, 특정 시간과 장소에 출·퇴근할 의무가 없는 점, 피고가 고인에 대해 다른 일을 못 하게 한 바 없는 점, 4대 보험 미가입과 근로소득세 미징수, 사업자로서 부가세 등을 납부한 점 등을 고인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징표로 파악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판례 법리에 충실하게 이와 같은 징표는 노동자성 판단에 부차적 요소이거나, 고인은 사실상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에 구속을 받았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전속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는 등 근무실태의 실질을 중심으로 1심과 정반대의 판단을 했다.

둘째, 대상판결은 방송사 업무의 특성을 노동자성 판단의 불리한 징표가 아니라 오히려 이와 같은 특성을 고려한 판단을 함으로써 노동자성 인정의 폭을 넓혔다. 즉, 대상판결은 고인의 근무시간에 다소 탄력적인 면이 있었더라도 이는 업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정규직 PD들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방송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다양한 소속과 직군의 직원들이 협업을 통해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점, 방송장비 등으로 인해 근무장소도 임의로 정할 수 없는 점 등 방송사 업무의 특성이 프리랜서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정규직도 마찬가지인 업무 자체의 특성이라는 점을 노동자성 판단에 있어서 충분히 고려해 구체적 타당성이 있는 결론을 도출했다.

셋째, 대상판결은 방송사의 국장이나 PD 등이 ‘프리랜서’와 직접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그들의 계약해지 조치를 방송사의 해고 조치로 판단했다. 결국 형식적인 계약의 주체는 방송사 간부들이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계약 당사자는 방송사로 보고 이와 같은 계약해지를 명백한 부당해고로 판단한 것이다.

한편 대상판결 이전에 이미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을 위해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는데, 대상판결은 당시 진상조사 결과를 상당 부분 원용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진상규명이 법적으로도 다시 한번 진실성을 확인받은 것이기도 하다.

대상판결은 사실인정이나 법리 적용 모두에 있어서 1심 판결이 얼마나 왜곡됐고 자본 편향적인 태도를 취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고인의 죽음이 있은 뒤에야 진실을 확인하게 되는 유족에게 법원의 판결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회적 약자의 최후 보루라는 그들의 말이 참으로 무색하게 들린다.

지역 민영방송사 등에는 고인과 같이 장기간 전속돼 근무하는 ‘무늬만 프리랜서’가 상당히 많다. 대상판결이 고인의 염원처럼 방송사의 ‘무늬만 프리랜서’ 고용관행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선례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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