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현수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장

‘울산 북항 석유제품 및 액화가스 터미널 1단계 LNG 패키지 건설공사’는 한국석유공사가 SK가스와 합작법인으로 참여하는 국책사업입니다. 산업은행의 자회사(KDB인베스트먼트)가 주주인 대우건설과 SK건설이 시공합니다. 그런데 국책사업 현장에서 건설기계 노동자의 단체교섭을 부정하고 노조할 권리를 침해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울산지역 100여개 건설현장에서 이미 체결한 ‘특수고용직 건설기계 노동자 단체협약’이 대우건설의 지시로 거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벌써 40여일째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15일부터 단체교섭에 미온적인 건설사를 상대로 레미콘·펌프카 노동자들이 작업 거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직접적인 대화 한번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 인원 1천여명이 넘는 용역과 10~30여대의 타지역 레미콘·펌프카 용역차량을 동원해 노조와의 충돌만 초래하고 있습니다. 울산의 건설노동자들은 오로지 민·형사 고발 남발과 노노갈등으로 몰아가려는 구시대적 행태에 분노가 끓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레미콘 타설이 불가능하고 공사가 지연되자, 주말을 이용해 울산에서 60여킬로미터가 되는 경주시 건천읍에 소재한 Y레미콘에서 레미콘을 납품·운송하고 있습니다. 건설기술관리법까지 위반하면서까지 군사작전 하듯 타설작업을 강행했습니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엄마의 마음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던 지역 국책사업 현장이 되레 지역에서 모범적으로 진행돼 온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협 체결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국회와 정부가 못해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직접 현장에서, 지역에서부터 단협을 통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쟁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절박하고 정당한 의지를 국민혈세가 들어가는 기업과 공공기업이 막아서는 형국입니다.

지역언론과 대우건설이 양대 노총 건설노조 갈등으로 몰아가려고도 하지만 우리는 특수고용직 건설기계 노동자의 단협체결 투쟁이란 성격에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이미 100% 조직률을 가진 레미콘·펌프카·그레이더, 진동로러·불도저와 80% 정도의 조직률을 가진 덤프노동자 등 12개 건설기계 노동자로 구성된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와 건설기계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건설사와의 단협이 지난해 많은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체결됐습니다. 건설사들이 처음에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사업자이기에 ‘교섭단체로 인정할 수 없다’ ‘타지역에서 건설기계 노동자와 단협을 맺은 적이 없다’는 이유로 대기업 법무팀까지 동원해 거부할 명분을 찾았지만, 결국 지난해부터 100여곳이 넘게 단협을 체결해 왔습니다.

건설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호하는 방안이 시행돼도, 법이 바뀌어도 현장은 잘 모르고 지자체 행정단속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현장에 정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단협이 체결되면 이런 부분이 상당히 해소됩니다.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멀기만 했던 산재예방 안전조치가 단협이 체결된 뒤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건설회사의 인식을 바꾸고 건설현장의 부당한 요구도 막는 등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건설노동자까지 보호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습니다.

울산에서는 120년 전 노동자의 요구였던 ‘일제 악습 강제노역 철폐 건설기계 노동자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75일간 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레미콘 사측의 직장폐쇄와 계약해지, 손해배상·가압류 협박에도 2013년 노조 인정과 하루 14시간 장시간노동 철폐를 위한 73일 동맹파업을 벌였습니다. 2019년 413명 집단해고와 66일 ‘레미콘자본 파업’이라는 홍역을 앓았습니다. 홍역은 한 번에 끝나지만 여전히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노동기본권은 멀기만 합니다.

울산 건설기계 노동자 단협체결 투쟁은 어느 지역, 어느 한 현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판(?)’을 키우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부터 우리 단협이 관행에 벗어나는 과욕이 아닌가 싶어 단협 내용을 다시 곱씹어 보며 자기검열도 했습니다. ‘체불은 제발 절대 없게 해 달라. 사고 나지 않게 해 달라. 밥값을 달라. 일요일에 일하면 초과수당을 달라. 소변이라도 누게 정기 휴식시간을 달라’는 단협요구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이 투쟁의 상대가 재벌대기업과 공공기관이어서 저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두려움과 걱정이 앞섭니다. 투쟁 40여일이 지나 또 얼마나 더 힘든 시기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특수고용직과 단협은 언감생심이라며 “단체합의서라고 하자. 공문으로 처리하자”고 비아냥대고, 노조발전기금을 지칭하며 “돈으로 합의하자”는 말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길거리와 집집을 다니며 한 건이라도 건수를 올리려고 숱한 갑질과 부당함을 이겨내고 있는 260만 특수고용 노동자를 위해서도 절대 굽히지 않고 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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