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

코로나19를 경험한 지 1년 반이 가까워지고 있다.

백신접종이 속도를 내며 위기 극복의 희망을 품게 됐지만, 여전히 고용 문제는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다. 중소기업·자영업자의 고통 또한 커져만 가고 있다. 이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명확하다. 위기는 현장에서 두드러지고 있으며, 현장의 문제는 곧 지역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지역 차원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내 주체들의 준비가 부족하고, 위기 극복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사회적 대화의 현주소 ‘노동 배제’

지금의 위기는 지역 단위에서 지방자치단체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자체·경영계·노동계·시민단체·전문가들 간 공동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지역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 명칭이 지역 차원의 거버넌스든, 협치든, 사회적 대화든 모든 주체가 함께해야 위기 극복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이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한국판 뉴딜 정책’으로 떠들썩하던 몇 달 전. 지역에서 한국판 뉴딜 추진을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한다고 해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30여명 규모로 꽤 다양한 지역 주체들이 위원으로 위촉돼 주요 뉴딜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 정책을 논의하는 장에 가장 중요한 주체 중 하나인 노동의 대표자는 아무도 초대받지 못했다. 회의 내내 산업적 측면만 강조되고, 기업인들의 민원성 요구가 주를 이뤘다. 필자는 거버넌스 구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추후 노동계 대표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공감하거나 지지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역의 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논의의 장에 노동을 대표하는 주체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의 현주소다.

가능성 보인 ‘해고 없는 전주시’

물론 비관적인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초단체인 전주시의 ‘해고 없는 도시’ 선언과 이를 추진했던 과정을 들여다보면, 지역 차원의 위기 극복에 있어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통한 거버넌스의 중요성과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주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한옥마을 건물주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임대료 인하 운동을 시작했고,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했던 재난기본소득 논의를 촉발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데 일조했다. 지난해 4월 전주에서는 고용관계기관·기업·노동조합·전문가 등이 참여해 ‘해고 없는 도시’를 선언했다. 하지만 ‘해고 없는 도시’ 선언 이후 전주의 고민은 커졌다. 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해고 없는 도시’가 표방하는 가치에 동의했던 기업들도 어려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 해고 없는 도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지역 내 여러 주체가 최대한 해고를 예방하기 위해 가능한 대안을 함께 고민하고 지역의 새로운 가치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측면에서 전주의 시도는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전주시가 일방적인 시혜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지역 내 다양한 주체들과의 대화를 통해 관련 정책을 추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퇴색한’ 상생형 지역일자리

현 정부 들어 중요한 지역 일자리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역시 그 중심에는 지역 차원의 사회적 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사회적 대화의 가치가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 추진과정에서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제1호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선정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어떠한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주요 공약으로 채택됐고 정부 출범 이후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과거 지자체가 대기업 유치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과의 이별을 고하고, 지역의 주요 주체들이 사회적 대화(대타협)를 통해 지역 특색을 고려한 일자리 모델을 제시하면 이를 중앙정부에서 평가하고 예산을 투입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그간 수없이 강조해 온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원하청 상생, 경영 참여 등 4대 의제의 가치는 과연 지금도 유지되고 있을까? 매우 아쉽게도 지난 4월 준공식을 가진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결과물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는 원하청 상생이나 경영 참여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신입사원 채용면접 과정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견해를 묻는 등 사상검증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사 상생을 목표로 했던 광주형 일자리 가치는 왜 이리 퇴색했을까? 지역 내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했던 사회적 대화의 틀이 흔들리면서 애초에 광주형 일자리가 품었던 가치마저 놓쳐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광주형 일자리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추진되는 사회적 대화가 얼마나 취약한 구조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앙정부 역시 상생형 일자리 사업을 자신들이 제시한 틀에 과도하게 맞추려 한다. 노사상생 요소보다는 비즈니스 모델 관점을 과도하게 강조하며 당초에 세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훼손시킨 측면이 있다. 지역의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역시 거버넌스를 통한 위기 극복이나 일자리 창출 경험이 부족하고 당면한 여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보니 지자체나 대기업 논리에 끌려가는 경향을 보인다. 노·사·민·정 각 주체가 아래로부터의 역량을 강화해야만 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화 주체는 역량 강화, 정부는 지원해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서든, 한국판 뉴딜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든, 새로운 일자리 창출 모델 구축을 위해서든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사회적 대화 틀이 필요하다는 공감은 충분하다. 직면한 위기의식이 다양한 사회 주체들을 사회적 대화 테이블로 불러오고도 있다. 문제는 실질적이고 내실 있는 사회적 대화의 성과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리라.

지역에서 실질적인 사회적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거버넌스의 명확한 위상 정립이 필요하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협력체계와 역할 분담이 요구된다. 특히 각 주체 스스로 지역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한 역량 강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를 위한 정부 지원책도 필요하다. 아무쪼록 사회적 대화를 위한 여러 필요조건이 충족돼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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