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외무상 아서 밸푸어가 1917년 11월 유대인을 위한 국가를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운다는 선언(밸푸어 선언)을 하기 전까지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의 영토로 간주되고 있는 지역은 모두 팔레스타인의 땅이었다. 1차 대전에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점령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서방으로부터 이주하는 유대인의 식민지로 전락해 갔다.

1947년 11월29일 국제연합(UN) 총회는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분할에 관한 결의를 채택해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세운다는 결정을 내렸다(찬성 33표, 반대 13표, 기권 10표).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이듬해 5월11일 국제연합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던 이스라엘 국민국가(an Israeli nation-state)가 서구 열강의 기획하에 인위적으로 창설되는 기괴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역사에서 사라졌던 가상의 이스라엘을 실체의 국가로 창조한 미국과 영국은 자신들이 주도한 1947년 국제연합 결의를 무시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서의 아랍인 국가 창설을 방해했다. 그러는 동안 이스라엘은 서방의 군사적 지원 속에 무력으로 영토 확장을 꾀해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강점했다. 1947년 이전에는 지금 이스라엘의 영토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의 영토였으나, 2005년에 이르면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으로 대폭 축소됐다.

팔레스타인의 영토가 국가를 유지하기도 어려울 만큼 축소된 후인 2012년 11월29일 열린 국제연합 67차 총회는 팔레스타인에 ‘비회원 참관 국가’ 자격을 부여하는 안건을 찬성 138표, 반대 9표, 기권 41표로 통과시켰다. 이날은 국제연합이 정한 ‘팔레스타인 인민을 위한 국제 연대의 날’이었다. 밸푸어 선언이 있은 지 거의 백 년 만의 일이었다. 팔레스타인에 국제연합의 정식 회원국도 아닌 참관국 지위를 부여하는 데 반대표를 던진 9개 나라는 미국·캐나다·체코공화국·이스라엘·마샬제도·나우루·팔라우·파나마·미크로네시아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기권표를 던졌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아랍인 학살 사태는 이슬람 최대 명절인 라마단 기간 중에 이스라엘 군대와 경찰이 이슬람교 3대 성지의 하나로 예루살렘의 구도심에 위치한 알 아크사 성전을 공격함으로써 시작됐다. 이스라엘 군경의 습격으로 성전에서 예배하던 무슬림 수백명이 다치자 팔레스타인의 수니파 무장단체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포를 발사했고, 이에 대응해 이스라엘이 가자의 주거 지역에 무자비한 공중 폭격과 미사일 공격을 매일 감행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당국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지금까지 최소 200명이 죽고 1천300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어린이가 59명이었고, 여성이 35명이었다. 이스라엘측 사망자는 10명으로 그중 2명이 어린이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민간인들의 피해가 커지면서 이스라엘과 그 배후의 미국을 비난하는 국제 노동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대 노총인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는 지난 18일 미국 영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을 용인하는 미국의 해외 정책을 비난했다. 이날 집회를 이끈 자넬레 마테불라 사무차장은 미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주권 국가를 인정할 것”과 “팔레스타인 민족 청소를 자행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나아가 이스라엘의 반인륜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호소에 미국 정부가 반대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물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해외 노동조합들도 존재한다. 미국 노동운동 지도부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묵인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억압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이스라엘에 의한 봉쇄 장벽 건설로 야기된 팔레스타인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침묵해 왔으며, 이스라엘군에 의한 민간인 공격에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주류 노동조합들은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을 위한 로비단체인 유대인노동위원회(Jewish Labor Committee)의 눈치를 보면서 이스라엘 국가가 자행하는 전쟁과 점령에 기금을 제공해 왔다. 2015년 전미자동차노조(UAW)는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벌이는 경제제재 운동인 ‘보이콧, 투자 회수, 제재’에 참여해야 한다는 현장 조합원들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ITUC) 사무총장은 지난 11일 “이스라엘 정착민들에 의한 부당하고 불법적인 팔레스타인 토지 점거와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의 영속화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을 종식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완전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노총은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동등한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입장이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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