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르단 피난민 캠프에서 시리아 피난민이 코백스가 제공한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un.org>
▲ 요르단 피난민 캠프에서 시리아 피난민이 코백스가 제공한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un.org>

경제협력개발개구(OECD) 사이트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3월10일 세계 최대 비정부기구로 불리는 옥스팜(Oxfam)의 나비 아흐메드가 쓴 “‘민중의 백신(people’s vaccine)’이 집단안보와 경제회복의 중심”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는 가장 부유한 10개 나라에서 전 세계 백신접종의 75%가 이뤄진 반면, 130개 나라는 단 1개의 백신도 구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우리 눈앞에서 백신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체제)가 펼쳐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 말까지 가난한 나라들에서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에도 미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구적 수준에서 코로나19 전염병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사태가 계속된다면, 보다 진화한 여러가지 돌연변이 출현으로 선진국들의 백신접종 완료를 통한 집단면역도 지속가능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현재의 시나리오대로 선진국이 백신을 독점하는 사태가 지속된다면, 세계 각국에 백신이 공평하게 분배되는 상황과 비교해서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배 이상 늘 것이라고 미국 노스이스턴대학 연구진은 내다봤다.

아흐메드는 가난한 나라들을 위한 백신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로 미국이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백신 공급을 억제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도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백신 개발에 성공한 선진국들이 지적재산권이라는 미명하에 백신 생산기술 공개를 금지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에서 백신 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아흐메드의 분석이다. 캐나다는 인구의 5배에 달하는 백신 공급량을 이미 확보했음에도 가난한 나라들에게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코백스(COVAX)를 통해서도 백신을 공급받고 있다. 아흐메드는 지금 단계에서 코백스로부터 백신 지원을 받는 나라는 G7 국가들 가운데 캐나다가 유일하다고 비판하면서 개발도상국을 위한 백신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에서 생산하는 백신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으로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장하준 교수가 지지자로 참가하고 있는 ‘민중의 백신’(peoplesvaccine.org)은 “이윤의 백신”이 아니라 “민중의 백신”이 되기 위해서 백신을 “글로벌 공공재”로 간주해 재산권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신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재산권을 주장하지 말고 기술을 투명하게 공개해 백신 생산과 공급에서 일대 변혁을 만들어야 모든 사람이 안전한 상황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독점기업도 세계 전체를 위한 백신을 생산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백신 생산을 억제하고 가격을 상승시키는 독점의 벽을 허물어 지구적 생산을 하루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민중의 백신’측의 주장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은 2020년 6월4일 열린 글로벌 백신 정상회담에서 “코로나19 백신은 글로벌 공공재, 즉 민중의 백신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수상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코로나19 전염병에 대항해 인류가 단결하는 글로벌 보건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해외 수출을 억제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인류 공통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행동보다 말에 능한 서구 제국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추정치를 근거로 향후 15년 동안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천억달러에 못 미칠 것이라면서, 이 돈은 2020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각국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한 재정 정책으로 푼 12조 달러와 비교할 때 새발의 피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G7 국가들의 재정 지원만으로도 전 세계 백신 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앙헬 구리아 총장의 주장이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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