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대상판결 : 대법원 2021. 3. 11. 선고 2018도10353

1. 사건 개요

SK하이닉스(피고인 7, 도급인)는 총 공사비 1조 6천억원을 들여서 이천공장 내 반도체라인을 신축했다. 대부분의 공사는 A 회사에 도급을 주고, VOC 저감설비(이 사건 설비)의 제작·설치에 관해서만 듀어코리아(피고인 8, 수급인)에 직접 발주했다(34억원 규모). 도급인이 직접 시공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사망사고는 2015년 4월30일 오후 12시4분께 건물 8층 옥상에 있는 이 사건 설비 설치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도급인이 이 사건 설비의 시운전 일정을 앞당길 것을 요구했고, 수급인은 소속 노동자로 하여금 시운전 후 설비 내부 확인을 지시했다. 본래 설비 내부에는 산소가 있어야 하나, 도급인이 용접 부위 산화방지를 위해서 ‘질소’를 채워 놓은 상태였다. 이를 모르고 설비에 들어간 수급인 소속 X와, X를 구조하러 들어간 수급인 소속 Y·Z가 모두 질식으로 쓰러져 3명이 사망했다.

피고인 현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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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급인 책임에 관한 법원 판단

이 사건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보건 조치 의무가 있는 수급인인 피고인 7.이 “밀폐공간 보건작업 프로그램”(옛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619조 이하)을 시행하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 인정됐다. 이 사건 설비 내부는 밀페공간이고, 그렇다면 작업 전 공기상태 측정, 응급조치에 관한 교육과 훈련 시행, 송기마스크 착용 및 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전혀 하지 않아서 3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급인 소속의 중간책임자와 실무자인 피고인 2.~6.도 업무상 주의의무를 불이행했다고 봐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인정됐다.

남은 것은 도급인인 SK하이닉스에게도 책임을 지울 수 있는지 여부였다. 옛 산업안전보건법(시행 2020. 1. 26., 법률 제16272호, 2019. 1. 15. 전부 개정되기 전의 법으로, ‘김용균법’으로 개정되기 이전의 법이다) 29조1항은 도급인이 안전·보건 조치 위반의 형사책임을 지는 경우를 제한하고 있었고, 도급인도 여기에 기초해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보자.

첫째로, 도급인은 도급인과 수급인의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에 생기는 산업재해”를 예방할 의무가 있는데(산업안전보건법 29조1항 본문), 사고 당시에 도급인의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 없었으므로 책임질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같은 장소”를 규정한 취지는, 도급인이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과 의무가 있는 경우에 책임을 지우기 위한 것이라고 봐 장소적 동일성만으로 충분하고 시간적 동일성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6. 3. 24. 선고 2015도8621 판결). 이 사건의 법원도 이 부분이 크게 문제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둘째로, 도급인은 “사업의 일부를 분리해 도급을 줘 하는 사업”인 경우에 도급인이 형사책임을 지는데(산업안전보건법 29조1항1호), 도급인이 건설공사를 전혀 직접 시공하지 않고 전부 도급을 줬으므로 “사업의 일부를 분리해 도급을 줘 하는” 경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도급인이 옛 산업안전보건법 29조1항의 취지가 도급인과 수급인 소속 노동자들이 서로 다른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단일한 공정계획 아래에서 같은 사업장에서 여러 업무가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수행되는 경우에 도급인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한 취지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 사건의 경우 도급인이 자신의 노동자 37명으로 TF팀을 구성해 현장에 배치하고, 수급인들 사이의 공사기간 및 일정조율 등의 공정관리를 했으며, 주간업무와 일보를 보고받고, 안전작업관리 및 보완지시를 하며, 질소 등 유틸리티 관련 직접 실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총괄했고, 안전보건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지시까지 했음을 들어, 도급인이 도급 준 각 사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하고 있다고 봤다. 이런 경우는 사업의 일부를 도급 준 경우여서 도급인이 책임짐이 타당하다고 보았다(상세한 근거는 원심인 1·2심 판결 참조).

3. 판결 의의 : 도급인의 형사책임,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

이 판결은 도급인이 사업의 각 내용을 분할해 형식적으로는 사업의 전부를 도급 줬어도, 도급인이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에는 일부 도급에 해당한다고 본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63조는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도급인도 관계 수급인(중층 하도급 포함)의 근로자를 위해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진다고 정한다. 이 경우 사내하도급은 당연히 포함되고, 사외하도급의 경우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경우로서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16군데)인 경우라면 도급인도 의무를 진다. 한편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5조에서도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도급인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도급인이 수급인의 종사자에 대해 의무를 진다고 정한다. 이러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상 “도급인이 지배(·운영)·관리”를 해석함에 있어서, 이 사건 판결이 활용될 여지가 있다. 도급인이 근로자 파견관계와 같이 업무에 관한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지 않았어도, 도급인으로서 작업내용 전반을 관리하는 정도만으로도 도급인의 지배·운영·관리가 인정될 여지가 상당하다.

또한, 도급인의 안전보건총괄책임자(피고인 1.)가 지는 형사책임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해당 공사는 총 1조6천억원 규모로, 하루에도 수백 개의 장소에서 공사가 수행될 것이다. 피고인 1.은 이러한 대규모 공사에서 본인이 세부적인 사항을 지키고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다는 주장이 가능하다(의무위반의 ‘고의’가 없다).

그럼에도 법원은 피고인 1.에게 법 위반의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근거로 사업장에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향후 그러한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정을 사업주가 미필적으로 인식하고서도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이로 인해 사업장에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로 작업이 이뤄졌다면 사업주가 그러한 작업을 개별적·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위 죄는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제시했다(대법원 2010. 11. 25. 선고 2009도11906 판결). 이에 따르면 사업주 등 경영책임자는 사고의 원인이 된 역사적인 행위를 인식하고 의무를 불이행해서 처벌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 의무 위반 상태가 지속되면서도 방치했음(미필적 고의)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1·2심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마치 피고인 1.이 사고의 원인이 되는 세부적인 사항을 이행하지 아니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지만, 실제로는 피고인 1.이 평소에 하급자들이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를 방치하는 등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에 가깝다.

이렇게 본다면 중대재해처벌법 4조1항4호에서 정하는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라는 것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단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의 미필적 고의를 설명하는 법리를 보다 친절하게 풀어 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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