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노동기준법은 사업장에 종업원의 과반수를 조직한 노동조합(과반수조합)이 없는 경우 종업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과반수대표)를 ‘노동자대표’로 해 종업원의 의견을 모아 사용자와 논의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기준법 32조는 법정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 주 40시간으로 정해 놓고 있다. 만약 종업원에게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켜야 할 때 사용자는 과반수노조가 있는 경우엔 해당 노조와, 과반수노조가 없는 경우엔 과반수대표와 서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노동자대표의 중요한 역할은 노동자들을 대표해 노사협정이나 취업규칙을 체결하거나 개정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대표는 노동기준법 36조가 정한 시간외근무와 휴일근무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과반수노조나 과반수대표와 협정을 체결할 수 없다면, 원칙적으로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시간외근무나 휴일근무를 시킬 수 없다.

사실 노동자대표의 역할은 노동기준법 36조에 규정돼 ‘36협정’으로도 불리는 시간외근무와 휴일근무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는 범위를 뛰어넘는다. 일본의 노동행정연구연수기구 오학수 주임연구원의 <노사관계론에서 본 종업원대표제 실태>에 따르면(일본노동연구잡지 2013년 1월), 법률로 규정된 과반수대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노동기준·직업안정·기업연금·후생연금보험·구조조정을 포함해 12개 분야, 110개 사안에 달한다.

그중 노동자대표가 노사협정을 통해 동의권을 행사하는 사안은 ‘36협정’에 해당하는 시간외근무와 휴일근무를 비롯해 △저축금관리 △재형기금 설립 △휴가수당 지불방법 △퇴직수당 보전조치 △변형노동시간결정 △휴게시간 예외 △사업장 외 노동시간 결정 △기숙사규칙 △안전위생위원 추천권 △중소기업 긴급 고용안전지원금 △중소기업 정년연장 △고령자고용 모델기업 지원금 △후생연금기금 규약작성 △기업연금 규약작성 등 무려 66개에 이른다.

노동자대표가 사용자와 협의를 하거나 의견을 낼 수 있는 사안은 회사분할 논의, 취업규칙 작성 변경, 노동계약 변경, 안정위생계획 작성, 사업양도, 영업양도, 파산관리, 단시간 노동자 취업규칙 작성, 고령자 재취업지원 등 22개다. 또한 노동자대표는 기업이 설치한 예금보건위원회·퇴직수당보전위원회·안전위원회·노동시간설정개선위원회·노사위원회·고충처리기관에 위원을 추천하거나 지명할 수 있다. 그리고 파산개시 수속 결정, 파산회사 재산 현황, 채권자회의 날짜, 회사 회생계획 결정, 사업구조조정에 관련한 정보를 통지받고 의견을 진술하는 권한도 가진다.

법률은 노동자대표가 사업장의 종업원들을 대표해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해 오학수 연구원은 “과반수대표제의 역할이 다양한 것은 기업경영에서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할 기회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좋은 현상이지만, 과반수대표제의 역할이 증가하는 데 비해 제도 자체는 형해화되고 있어 (과반수대표가) 노동자의 의견을 정확하게 반영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분석한다. 회사가 노동자대표를 지명하거나 사원회 대표가 자동으로 노동자대표가 되는 경우가 많아 노동자대표 선출 과정이 민주적이거나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최대 노총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는 2001년 10월 정기대회에서 ‘노동자대표제법안 요강 골자(안)’을 승인하면서 노동자대표 제도의 법제화 작업을 시작했다. 2006년 6월 열린 렌고의 중앙집행위원회는 ‘노동자대표제 법안 요강 골자(안)’을 보강했다. 2009년 렌고의 정기대회는 “노동자대표제의 법제화를 추진한다”고 결정했고, 2010~2011년도 ‘정책제도 요구와 제안’에서 “과반수대표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로잡고 개선해 노동자대표제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렌고의 법안은 “사업장에 노동자의 과반수로 이뤄진 노조가 없는 경우에 노동법규 등에 따른 노동자대표와의 협정체결과 의견청취를 위해 노동자를 대표하는 기관을 설치하고, 그 자주적· 민주적 운영을 확보하는 틀을 법적으로 정비”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과반수로 이뤄진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동법규 등에 따른 노동자대표 등의 협정체결과 의견청취 등을 위해 과반수노조가 비조합원을 포함해 당해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의 의견을 적정하게 집약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정비”한다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다.

렌고의 법안은 10명 이상 사업장에 노동자대표위원회를 설치하되 10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노동자대표원을 두고, 사업장 노동자의 과반수로 이뤄진 노조가 있는 경우엔 그 노조를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대표위원회로 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렌고의 법안은 해당 기업에 복수의 사업장이 있는 경우 모든 사업장에 노동자대표위원회를 두는 동시에, 사업장 노동자대표위원회가 선출하는 노동자대표중앙위원으로 중앙노동자대표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의 종업원평의회(works council)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렌고의 법안은 과반수노조가 결성된 경우 노동자대표위원회를 해산시키며 노동자대표위원회가 사용자와 체결한 기존의 협약은 신설된 과반수노조가 계승하도록 했다. 노동자대표위원회가 노조 결성과 노조가 하는 단체교섭과 노사협의·단체협약 체결 같은 노조활동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내용도 담았다. 렌고의 법안에는 노동자대표의 임기가 2년을 초과할 수 없고 연임은 가능하며 노동자대표위원회의 총회는 최소 연 1회 소집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노동자대표위원 선출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절차나 방안을 밝히지 않고 있다. 렌고의 법안에서 흥미로운 점은 노동자대표위원에 대한 임금 지급, 근무 면제, 유급연수휴가, 사무소의 각종 편의 제공 의무를 사용자에게 부과한 점이다.

한국과 같은 노사협의회 제도가 일본에는 없다. 한국의 근로자대표 제도처럼 일본의 노동자대표 제도도 껍데기만 남아 있다. 렌고가 주도하는 노동자대표제 논의는 일본 안에서 아직 크게 활성화돼 있지 않은 듯하다. 기업별로 쪼개진 노사관계가 횡행하는 두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종업원’대표제 논의가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관심을 가질 때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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