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보험설계사들은 63빌딩을 ‘피골탑’이라고 부릅니다. 보험설계사가 직접 보험상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으로 보험사가 건물도 짓고 운영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번 단체교섭 갈등을 겪으면서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막고 이방인 취급하는 것이 서러워요. 그래서 노조라도 만들어 뭉치고 자존심을 세워 보겠다는 겁니다.”

김준희(60·사진)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장은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 1월21일 설립한 지회는 2월25일 단체교섭을 요구한 뒤 지금까지 사용자쪽과 갈등을 빚고 있다. 보험설계사 수입과 직결된 보험상품 수수료 환산율과 수수료를 공개하고 협상할 것을 요구하자 ‘몽니’를 부린다는 비난만 뒤집어썼다. 분개한 이들이 63빌딩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2일이다. 이날로 천막농성 34일차다. 이날 오전 천막농성장에서 김준희 지회장을 만났다.

수십 년 일한 보험설계사들
고용안정 요구하자 ‘몽니’ 뭇매

- 교섭이 여전히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시작도 못 했다. 회사가 앞서 사무금융노조 한화생명지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지회와 지부는) 상급단체가 같다. 이후 지회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특수고용직 보험설계사로 정규직 노동자와는 고용형태와 노동환경이 현격히 달라 교섭이 필요한데도 회사쪽은 1사 1교섭이 원칙이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고 면담만 하고 있다. 그 면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료를 요청해도 다른 데서 구하라며 외면한다.”

- 무엇을 요구하고 있나.
“상식적인 것들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일한 노동자인데 이번에 한화생명이 보험상품 제조와 판매를 분리한다며 새로 설립하는 한화생명금융서비스로 옮기게 했다. 정규직은 이 과정에서 퇴직금을 받는데, 우리는 1년 위촉계약을 하는 특수고용직이라 아무런 보상이 없다. 지금 계약을 해지하고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위촉계약을 하는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 옮긴 뒤 고용보장도 안 된다. 그래서 퇴직금 성격을 담아 위로금을 지급하고, 고용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험설계사의 생명줄과도 같은 수수료와 수수료 환산율을 공개하고 함께 협의하자고 요구했다. 이게 몽니를 부리는 것인가.”

일반회사 노사는 ‘임협’ 하는데
보험설계사는 시나브로 임금삭감

보험설계사는 월급이 아닌 보험상품 판매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는 월납보험료와 수수료 환산율, 지급률을 곱해 산출한다. 수수료 환산율은 보험상품 수익성에 따라 달라진다. 보험료가 같은 상품이라도 책정된 수수료 환산율에 따라 보험설계사가 실제 받는 수수료는 달라진다는 뜻이다. 수수료와 수수료 환산율은 일종의 보험설계사 임금체계와 같다. 일반 회사라면 임금협상을 할 수 있지만 보험설계사는 특수고용직이라 그간 불가능했다. 실제 한화생명은 “회사의 고유 업무”라며 수수료 환산율 공개는커녕 협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지회는 이런 행태가 보험설계사의 직접적인 귀책사유 없이 수수료를 저하하는 것으로, 보험업법 위반이라고 본다. 그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게 김준희 지회장의 주장이다.

“연초에도 수수료와 수수료 환산율을 20% 일방적으로 삭감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회를 설립한 직접적 계기였죠. 이후 보험설계사들이 집단으로 문제제기를 하자 일부분을 금전적으로 보상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수료와 수수료 환산율은 원상복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판매가 많은 주력상품 수수료를 시나브로 깎아 왔어요. 보험설계사 계약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자동갱신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보험설계사들이 현업에 쫒겨 이런 수수료 강제 인하를 몰랐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계약서 원본도 갖지 못합니다. 개별적으로 일부 보험설계사만 요청해 사본만 가진 상황이죠.”

- 최근 판매조직을 분리하면서 수수료를 인상하겠다고 밝혔는데.“그것도 신뢰하기 어렵다. 현재 250%인 수수료를 370%로 올리겠다고 하는데 어떤 상품을 어떻게 올린다는 얘기가 없이 그저 올린다고만 하고 있다. 지금 수수료와 수수료 환산율도 공개 못하겠다는 태도 아닌가.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그저 ‘잘 챙겨 드리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을 어떻게 믿겠는가. 이미 올해 초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삭감한 전적도 있는데….”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지난달 26일 집회서 경찰과 충돌
“행진신고 마쳤는데 과잉대응”

- 갈등이 깊어지면서 경찰과 충돌도 있었다.
“경찰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상황은 기본적으로 노사 문제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노사 문제에 개입하는 것으로 오인할 우려도 있다. 지난달 26일 집회도 마찬가지다. 평화적 집회를 위해 노력했다. 2개 차로를 이용해 행진한다는 것도 신고를 마쳤다. 그런데 지나치게 많은 경찰력을 투입했고, 방역수칙 때문이라며 조합원을 막아서 충돌을 야기했다.”

지난달 26일 지회 집회 당시 고아무개(54)씨는 도로를 통해 행진을 하려다 이를 막아선 경찰과 충돌해 넘어지며 아스팔트에 머리를 부딪혔다. 검사 결과 뇌진탕이었다. 다행히 큰 출혈이나 정신을 잃는 사고는 없었지만 고씨 외에도 행진 곳곳을 경찰이 막아서며 충돌이 이어졌다.

“행진 신고를 했으면 안전한 행진을 위해 도로통제를 하고 안전을 보호하는 게 경찰의 역할인데 무작정 못 가게 막다 보니 충돌이 더 커졌습니다. 이곳(농성장) 천막을 설치할 때도 몰려왔고, 고씨 부상에 항의하며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더니 더 많은 인원이 같은날 오후 이곳(농성장)으로 몰려왔어요. 도대체 왜 자꾸 평화집회를 방해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전환 준비는 어떤가.
“엉망이다. 그간 생명보험만 팔았는데 한화생명금융서비스에서는 이제 손해보험도 판매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화생명 지점장들이 손해보험 판매 자격이 없다. 도대체 지난 수개월간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만들겠다며 떠들었는데 해 놓은 준비가 뭐냐. 옮긴 뒤에는 생명보험뿐 아니라 손해보험도 9개 회사와 제휴해 판매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업무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지금은 팔 수 있는 상품이 거의 없는 상태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공개되지도, 논의되지도 않아 많은 보험설계사들이 영업을 못하고 손을 놓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