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무장승 두 개를 깎아 학교 문 앞에 세울 일이 있었다. 장소를 찾던 중, 딱 저기다 싶은 곳이 있어 의견을 전했더니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자리 심은 소나무 한 그루가 얼마인지 아느냐며 교직원은 우리를 나무랐다. 산이고 어디고 흔한 게 소나무였는데, 비싸 봤자 얼마나 하겠느냐고 따져 물었는데, 답을 듣고는 바로 입을 닫았다. 비쌌다. 예상을 훌쩍 넘는 숫자였다. 자주민주통일이며 노동해방 같은 구호 새긴 장승을 세우려던 뜨거운 피 청년들은 돈 앞에 겸손해야 했다. 다른 자리를 찾아 세웠다. 사는 동네 뒷산에 나무들이 자꾸 베어져 나간다고 사람들이 구청에 공사 계획을 묻고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페인트 띠 두른 나무들이 뎅겅뎅겅 잘려 나간 자리엔 무슨 운동시설이, 발에 흙 묻히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산책로가, 또 번듯한 커뮤니티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란다. 표 앞에 겸손해야 했던 정치인들이 지난 선거철에 뿌린 온갖 장밋빛 개발 공약 중 일부였다. 거기 둥지 튼 천연기념물 새 소리를 반갑게 여기는 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산은 산답게 두자며 난개발을 따져 물었지만, 이미 수억원의 예산이 책정된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포클레인이 오늘도 나무를 베고 산을 파헤치느라 비탈을 오르내린다. 때마침 확성기 단 선거 유세차량이 골목을 돌며 한 표를 호소한다. 연신 허리 굽혀 인사하는 선거운동원이 귀가 솔깃해지는 약속을 읊어 댄다. 내내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도심 어느 번듯한 빌딩 외벽 수선 공사가 한창이던데, 그 앞자리 나무가 혹여 다칠까, 보호망을 칭칭 둘렀다. 안전해 보였다. 나무 팔자가 그 값어치 따라 제각각이다. 사람들이 가진 한 표의 값어치도 철 따라 오르내리곤 하는데, 그저 일하다 죽고 다치는 일만이 사철 푸른 나뭇잎처럼 변함없다. 집값이 그렇게 올랐다는데, 사람 목숨값이 그린벨트에 묶인 맹지처럼 여전히 저렴하다. 그 흔한 개발 호재도 없다. 어제의 참담한 죽음을 기억하지 못해 억울한 죽음은 오늘 또 이어진다. 철 따라 값어치 한껏 오른 투표권 들어 나무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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