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전체회의에서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의 양형기준을 상향하기로 결정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의 기본 양형기준을 징역 1년∼2년6월로 정했다. 기존 형량범위(6월~1년6월)보다 6월~1년 상향한 것이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하고 다수의 피해자가 생기는 등 다수범의 경우라면 최대 권고형량을 징역 10년6월로 늘려 정했다. 기존보다 권고형량을 높였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봤다.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양형기준이 필요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차장
 

▲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차장
▲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차장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 수정 양형기준(이하 산안범죄 양형기준)’을 의결했다. 한국노총은 양형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지난 2월 산안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지정토론자를 추천해 법인 기업에 대한 벌금형 양형기준의 필요성과 양형기준 강화, 노동자만을 집중해 처벌하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범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의견서를 통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범죄는 과실치사상죄와 같은 범죄로 논의해서는 안 될 고의범인 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양형기준 및 실제 집행되는 형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 법인 기업에 대한 벌금형 양형기준의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양형인자의 가감요소에서의 구체적 의견 등을 전달했다.

의결된 산안범죄 양형기준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보여주기식으로 형량의 숫자만 늘어났을 뿐 산업안전보건범죄를 과실의 영역에 두어서 양형기준을 수정했더라도 실제 판결에서 적용될 때 과거와 비추어 발전된 판결이 나오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범죄는 과실의 영역이 아닌 고의범 범주로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산업안전보건상의 위반행위는 법인의 업무수행, 즉 법인의 이윤을 위해 요구하는 바를 해당 노동자가 작업을 수행하다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인과 경영책임자는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안전·보건의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양형위원회는 선도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해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이 내려지도록 양형기준을 수정해 산재예방의무의 제1주체인 법인과 경영책임자가 선제적인 산재예방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야 했다.

이번 산안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이 나온 이유는 지난해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로 38명의 노동자가 죽은 것에 대한 후속조치적 성향이 크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에 대한 1심 판결은 지난 2008년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던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와 같았다. 현장소장 등을 비롯한 현장실무자만이 자유형을 선고받고 원청사와 경영책임자 등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이렇게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 계속해 되풀이되는 것을 보고도 양형위원회는 과거의 관습에 사로잡혀 산안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보여주기식으로 수정했다. 제2, 제3의 대형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져야 할 법인과 경영책임자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게 만들어준 것과 다름없다.

양형위원회는 양형과정에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함으로써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8명의 목숨을 잃게 만든 대형참사는 법인과 경영책임자의 이윤을 위해 안전하지 못한 작업방법으로 노동자가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든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덮어둔 채 보여주기식으로 수정한 산안범죄 양형기준은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지도 못할 것이고 불신, 불공정, 주관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는 양형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양형위원회는 스스로의 설립목적을 되돌아보며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되묻길 바란다. 위험을 방치해 이윤을 얻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한 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을 확립하길 바란다.

솜방망이 처벌 개선 의지는 보여, 집행유예 가능한 것은 큰 한계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는 3월 29일 산업안전보건법위반범죄 양형기준 설정 범위를 확대하고, 형량 범위를 상향한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 수정 양형기준을 최종 의결했다.‘상당 금액 공탁’을 감경인자에서 삭제하고, ‘유사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경우’를 특별가중인자로 반영해 사고가 재발한 경우 가중처벌하고, ‘다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 역시 특별가중인자로 반영해 사고 규모가 큰 경우 가중처벌 등 양형인자를 정비한 것이 핵심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의 산재사망 국가이다. 1994년부터 2016년까지 23년 동안 단 두 차례(2006, 2011) 터키에 1위를 내줬을 뿐, ‘OECD 산재사망률 1위’의 불명예를 벗은 적이 없다. 단적으로 2014년 기준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10만명당 10.8명으로 EU 회원국 평균(2.3명)의 약 5배에 이른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 범죄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상당수가 약식사건으로 처리되고 구공판 사건에서도 대부분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빠져나간다.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벌금형이 선고되는데 그 평균액수는 약 500만 원에 불과해 범죄에 대한 위하력이나 재발 방지 효과가 거의 없다.

수정된 양형 기준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하려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다만,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은 권고적 의미에 그치므로 실제로 강화된 양형기준이 적용되어 과거 솜방망이 처벌이 개선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에서 아쉽고 미진한 부분도 있다. 첫째, 이번 양형기준은 양형자료조사 결과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가 있는 범죄’에 한정해 양형기준을 설정했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상당수가 ‘벌금형’에 그친 솜방망이 처벌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전제로 양형기준을 설정한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둘째,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 범죄에서 ‘징역형’ 양형기준 권고 형량범위를 상향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집행유예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계도 명확하다. 기본범죄(1년~2년6월)는 물론, 가중(2년~5년), 특별가중(2년~7년), 다수범(2년~10년6월) 모두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택해 집행유예가 가능하므로 과연 솜방망이 처벌을 제대로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셋째, 산안법상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죄의 형량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다. 실제 재판에서 벌금형을 선택하면 그만이고, 수정된 양형기준은 해당사항이 없다. 과거 솜방망이 처벌로 비판받았던 주된 이유는 징역형 대신 대부분 벌금형을 선택했다는 점에 있는데 수정된 양형기준은 이 부분을 전혀 개선하지 않았다. 징역형과 벌금형의 선택과 적용기준을 명확히 해 양형기준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넷째, ‘상당 금액 공탁’을 감경인자에서 삭제한 것은 긍정적이다. 피해자·유족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일정한 금액을 공탁하고, 이를 근거로 솜방망이 처벌을 하던 기존 관행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실제 재판 과정에서 이러한 양형기준이 제대로 정착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섯째, 자수·내부 고발 또는 조직적 범행의 전모에 관한 완전하고 자발적인 개시를 특별감경인자로 둔 것도 의미가 있다. 기업 범죄 특성상 범죄에 가담한 사람의 수사협조를 끌어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취지와 다르게 실제 책임을 부담해야 할 경영책임자 등이 이를 악용할 수 있으므로 특별감경인자를 적용함에서는 신중하고 기준과 이유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부디 이번에 수정된 양형기준이 실제 재판에서 제대로 정착되고, 미진한 부분을 채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개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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