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전지방법원 2020. 2. 3. 선고 2019구합108267 판결

1. 사건 개요

갑 회사(피고보조참가인)는 선박의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는 법인이다. 주요 방산물자인 잠수함 같은 군함도 제작하고 있어 경비업법 2조1호마목의 특수경비업무 대상인 국가중요시설이자 통합방위법 21조4항에 따라 국방부 장관이 지정하는 국가중요시설에 해당한다. 이에 갑 회사(청원주)는 청원경찰법에 따라 관할 지방경찰청장의 승인을 받아 원고들을 청원경찰로 임용해 조선소에 배치했다.

청원경찰은 청원주가 △관할 지방경찰청장의 승인을 받아 직접 임용해야 하고(청원경찰법 5조1항) △청원경찰의 임금과 각종 수당·피복비·교육비를 부담해야 하며(법 6조) △청원경찰의 근무 상황을 감독하고(법 9조의3)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하는 등(법 시행령 19조) 청원경찰법은 청원주와 청원경찰 간 근로계약관계를 당연한 전제로 규정돼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청원경찰의 배치 및 감독권한은 경비도급업체에 위임해 수행할 수 있다(청원경찰법 시행령 19조).

그런데 갑 회사는 국가중요시설인 조선소 방호를 위해 청원경찰법에 따른 청원경찰들을 임용했으면서, 정작 근로계약서는 경비용역업체인 을 회사와 체결하도록 했다. 즉, 갑 회사는 청원경찰법 시행령 19조에 따른 배치·감독권한만의 위임이 아니라, 아예 사법상 근로계약 체결 주체를 을 회사로 삼은 것이다. 을 회사는 갑 회사의 완전 자회사로 설립됐다가 최근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한 업체다.

2019년 초 을 회사는 경영상 이유를 들며 소속 청원경찰들의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대폭 삭감할 것을 요구했다. 청원경찰들이 임금삭감을 집단적으로 거부하자 을 회사는 같은해 4월1일자로 임금삭감을 거부한 청원경찰 전원을 해고했다. 이어 갑 회사는 을 회사와의 기존 경비용역계약을 종료시킨 뒤, 또 다른 용역업체를 통해 기존과 동일하게 청원경찰을 사용 중에 있다.

해고된 청원경찰(원고)들은 자신들의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청원주인 갑 회사이고, 이 사건 해고는 사용자인 갑 회사가 한 부당해고라며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갑 회사가 청원경찰들의 사용자가 맞다면서 이 사건 해고를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그러나 이후 중앙노동위원회는 “갑 회사의 청원경찰 임용행위는 청원경찰법에 따른 공법상 행위일 뿐이고,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을 형성하는 행위는 아니다”며 갑 회사가 청원경찰들의 사용자가 아니라면서 초심판정을 취소하고 청원경찰들의 구제신청을 각하했다.

해고된 청원경찰들은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상판결은 갑 회사가 원고들의 사용자가 맞고,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원고 전부 승소판결을 선고했다.

2. 당사자 주장

원고들은 △갑 회사가 한 ‘임용’ 행위는 국어사전적으로도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고용’에 해당하고 △청원경찰법은 청원주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임을 당연한 전제로 규정돼 있으며 △도급은 ‘배치·감독권한을 위임’하는 데 한해 가능한 점 △국가주요시설 보호를 위한 청원경찰법의 취지 △갑 회사는 원고들의 노무를 제공받으려 했고, 실질적으로도 임금을 부담하며 상당한 작업지시를 해 온 점 △청원경찰 관련 주무부처인 경찰청도 청원주인 갑 회사를 원고들의 사용자로 인지했던 점 △이 사건 도급계약은 갑 회사가 청원경찰법과 노동법상의 사용자책임을 모두 회피하기 위한 탈법적 동기 외 다른 동기는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갑 회사가 설령 사법상 고용을 한다는 진정한 의사 없이 임용행위를 한 것일지라도, 규범적으로 이 사건 ‘임용’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원고들은 예비적으로 갑 회사가 원고들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해 왔고, 원고들은 갑 회사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갑 회사와 원고들은 파견근로관계에 있으므로 구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원고들은 갑 회사의 근로자로 간주된다는 주장도 했다.

이에 대해 갑 회사(피고보조참가인)는 △근로계약서 작성 주체가 을 회사이므로 원고들의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을 회사이고, 갑 회사의 임용행위는 청원경찰법에 따른 공법상 행위일 뿐 사법상 고용행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설령 청원경찰법이 청원주와 청원경찰 간 근로계약관계를 당연한 전제로 규정돼 있다 하더라도 이를 강행규정이라고는 볼 수 없고, 파견법과 같은 고용관계 의제 규정도 없는 이상 원고들과 갑 회사 간 근로계약관계를 형성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갑 회사는 공법상 행위로서 관할 지방경찰청장에게 임용승인 신청을 한 사실은 있지만 원고들에게 임용의 의사표시를 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예비적 주장인 파견근로 주장에 대해서도 갑 회사는 지휘·명령 등 파견근로의 요소는 모두 경비업법상 특수경비에 대한 감독권한 행사에 불과하고, 그 외 요소들도 모두 청원경찰법에 따른 공법상 행위에 불과하므로 파견근로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3. 주요 쟁점 및 대상판결 요지

이 사건 주요 쟁점은 갑 회사가 청원주로서 청원경찰을 ‘임용’한 행위는 제반 사정을 고려했을 때 사법상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성립시킨 것인지(즉, 임용행위가 공법상 행위에 불과한지 사법상 근로계약 형성 행위로도 볼 수 있는지)에 있다. 예비적으로 파견근로관계 성립 쟁점도 있지만 대상판결에서는 주위적 주장이 인용됨에 따라 예비적 주장인 파견근로에 대한 판단은 따로 하지 않았다.

대상판결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관한 법리 일반을 설시하면서, 위 원고들의 주위적 주장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며 대우조선의 ‘임용’ 행위로 묵시적으로 원고들과 대우조선 간에는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였다고 판결하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청원경찰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청원주의 청원경찰에 대한 임용행위는 △‘임용’이라는 단어 자체의 사전적 의미 및 성격 △청원경찰법령에서 청원주가 직접 임용한 청원경찰의 실질적인 고용주임을 전제로 그 임금 등을 모두 직접 부담하고, 면직이나 징계처분을 비롯한 인사상의 권한을 직접 행사하도록 정하고 있는 점 △청원주로부터 임용된 청원경찰은 청원주의 사업장 등에 배치돼 그 구역의 경비를 목적으로 청원주만을 위해 그 직무를 수행하게 되는 점 △나아가 청원경찰법은 청원주에 대해 여전히 청원경찰의 고용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도록 하면서 다만 청원경찰에 대한 감독 등의 일부 권한만을 경비업자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이라고 보이는 점 등 위 청원경찰법의 내용 및 취지와 목적 등에 비춰 볼 때, 청원주인 참가인(갑 회사)이 원고들(청원경찰)을 임용한 행위는 청원경찰과의 근로관계를 창설하는 사법상 채용 내지는 고용행위와 동일한 의미로 봐야 한다.

② 참가인이 을 회사와 이 사건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해 원고들에 대한 인사·교육·징계 등 인사관리뿐만 아니라 근무 배치 및 임금 지급, 근로계약 체결 등을 위 을 회사가 직접 했으나, 이는 청원경찰법령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으로서 행정적 제재대상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청원경찰법에서 정하고 있는 청원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 것으로서 부당하다. 또 만약 청원주가 아닌 다른 제3자에게 청원경찰의 고용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 청원주로 하여금 위 청원경찰법에서 정하고 있는 청원주로서의 의무 및 책임을 선별적으로 회피할 수 있도록 한다면 청원경찰의 신분상의 불안을 해소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하고자 하는 청원경찰법의 취지와 목적에 어긋나게 되고, 청원경찰법 자체가 형해화될 수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을 회사가 위와 같은 행위를 했다는 점만으로 원고들과 참가인 사이의 근로계약관계가 해소됐다거나 참가인이 아닌 을 회사만이 원고들의 고용주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참가인이 청원경찰법상 청원주로서의 의무를 선별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일 뿐이다.

4. 평가

헌법과 근로기준법은 상시 사용하는 근로자는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직접고용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현장에서는 사내도급의 형태로 간접고용해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만연해 있다. 그러다 보니 청원경찰법에 따라 경찰공무원에 준하는 권한과 의무가 부여되는 청원경찰조차 도급으로 처리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청원경찰법은 근로기준법이나 파견법처럼 산업일반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청원경찰’이라는 구체적 신분에 대해 청원주를 당연한 사용자로 규정하고 상당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원경찰법이 단속규정에 불과하다며 전면적인 도급을 인정하게 되면 이는 청원경찰법을 형해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원고들이 갑 회사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중노위조차 이와 같은 청원경찰법의 형해화 문제는 인정하면서도, 다만 이는 입법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청원경찰 간접고용은 회피수단을 통해 법 적용을 피해 가는 전형적인 탈법행위로, 기존의 법 해석을 통해 이를 제지할 수 있다면 그러한 결론을 택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상판결은 이런 입장에서 청원주인 갑 회사의 임용행위 및 제반 사정을 고려해 갑 회사의 임용행위를 원고들과 갑 회사 간 사법상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성립시킨 행위로 인정하는,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법 해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상판결은 비록 청원경찰법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나, 유사하게 청원경찰을 도급형태로 사용하고 있는 타 사업장에도 준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헌법과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위배해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 회피수단으로서의 무분별한 간접고용을 남발하는 잘못된 관행을 줄여 나가는 방향의 판결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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