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계절이라지만 포장에 쌓인 저 꽃은 대개 어느 화원 온실에서 자란다. 환절기라지만 신상에 바뀐 것은 없어, 해고 노동자들은 어느 거리 한쪽 천막에 들어 산다. 주렁주렁 매달린 모자엔 저마다 빨간색 투쟁 머리띠 붙어 설레는 봄 나서는 길마다를 무슨 행진이며 어떤 투쟁이며, 아무개 연대라고 부른다. 그래도 기념할 만한 일은 있기 마련인지, 작은 꽃다발 하나 그 줄에 달렸다. 버스와 큰 트럭이 지나갈 때면 굉음 따라, 바람 따라 모자와 꽃다발이 달랑달랑 흔들렸다. 천막 벽이 펄럭펄럭 울었다. 그 바람에 목소리가 자주 묻혔다. 어느덧 1년여, 시간 따라 관심은 멀어져 갔다. 해고가 부당했다는 노동위원회의 판정은 지난한 소송전에 들어갔다. 선거철이라고 온라인 게시판이, 어느 네거리 사람 많은 곳이 떠들썩하다. 해고자들이 어느 후보자 캠프를 찾아가 이런저런 소동을 벌이고서야 그들 목소리 얼마간이 뉴스 카메라에 담긴다. 꽃피는 계절, 길거리 천막 농성장에 더는 새롭게 기념할 만한 일은 없던지 줄에 걸린 꽃다발이 푸석푸석 말라 간다. 마이크 잡은 해고자는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느라 목이 쉬어 간다.
말라 간다
- 기자명 정기훈 기자
- 입력 2021.03.2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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