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연일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산재 사망사고의 대부분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제외되는 5명 미만 사업장과 1년간 유예되는 50명 미만 사업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규모별·산업별 사업체 현황을 보면 50명 미만 사업장은 전체 410만개 중 405만여개로 98.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2019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업무상사고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업무상사고 사망자 비율)은 △5명 미만 사업장 1.00 △5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 0.44 △50명 이상 100명 미만 사업장 0.35 △10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0.31 △300명 이상 1천명 미만 사업장 0.22 △1천명 이상 사업장 0.07이었다. 사업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업무상사고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5명 미만 사업에서는 1천명 이상 사업장에 비해 무려 약 14.3배나 많은 노동자가 업무상사고로 사망했다.

일부 기업의 ‘작업중지권’ 전면보장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으로 이미 노동자에게는 작업중지권이 법적 권리로 부여됐다. 하지만 실제 일터에서는 이러한 권리를 제대로 알려 주지 않고 있다. 노동자가 알고 있더라도 고용이나 징계 등 유무형의 불이익에 대한 압박으로 작업중지권은 보편적 권리로 현실화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삼성물산과 포스코건설 등에서는 모든 현장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전면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상황’이 아니더라도 노동자가 안전하지 않은 환경이나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작업중지권을 쉽게 행사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돼 온 불이익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실질적인 보상과 포상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더불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로 공사가 중단되고 차질이 빚어질 경우 협력회사에 대해 손실을 보전해 주기로 하고 이를 공사계약에 반영하기로 했다. 작업중지권 행사로 현장 위험요소를 사전에 발굴하고 제거하는 데 적극 참여한 노동자들에게는 인센티브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이러한 변화는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작업중지권 보장이 어느 한 기업에 머물거나 선언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용자단체를 비롯해 노동계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뒷걸음한 노동부 작업중지 명령·해제 기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당선된 뒤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발표와 더불어 산업안전보건의 날 대국민 메시지에서 ①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외주화하지 않을 것 ② 안전은 고용형태나 규모에 의해 차별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할 것 ③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 ④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구성을 약속했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2017년 9월28일 ‘중대재해 등 발생시 작업중지 명령·해제 운영기준’을 만들어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전면작업중지를 통해서 사업장의 안전보건총괄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점검으로 동일한 사업장에서 다시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경총을 필두로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규제가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나왔다. 보수언론을 통해서 기업도산과 국가경제 위기로까지 확대 재생산되면서 정부의 국정기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해당 지침과 규정은 180도 바뀌었고, 작업중지 해제 절차와 기준도 간소화했다. 더 심각한 것은 작업중지 해제 기준을 노동자들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의 규정은 심의위원회 구성부터 결과까지 모든 것이 비공개로 처리되고 있다.

이로 인해서 동일한 원인에 의한 사고와 죽음이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생명을 위한 양수겸장

일터에서 노동자가 억울하게 죽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온전한 시행과 더불어 노동자의 권리인 작업중지권이 노동자에게 보편적인 권리로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권리가 보장되지 못한 사업장에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사고발생 현상(안전조치 위반, 작업수칙 위반, 안전센서 미작동 등)만이 아니라 그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고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에게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기 때문에 노동부의 사후적인 조치인 작업중지 명령·해제 운영기준을 다시 회복,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그물망처럼 권리와 제도·법이 양수겸장해야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그리고 사회에서 시민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