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자격이 없다.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모든 결정도 책임도 내 몫이라니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이제 겨우 생후 70일이 된 아이를 안고 있으니 막막하기만 했다. 이 잔인하고 암울한 현실에서 남편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을 뿌리치며 앞으로 나와 함께 살아갈 아이만 생각했다. 그렇게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나름북스)를 보면서 15년 전 과로사 사건을 처음 담당할 때가 떠올랐다. 5살 아이를 손에 잡고, 1살 된 아이를 업고 찾아오던 부인의 모습은 내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젊은 남편을 헤르페스바이러스 뇌염으로 잃고, 부인은 일주일에 한 번은 내게 찾아왔다. 결국 산재가 불승인됐고, 당시 가장 유명한 법률사무소에 의뢰했다. 결국 패소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후회와 아쉬움으로 나를 자책했다. 그때 즈음 다른 과로자살 사건을 맡게 됐다. 어린 두 딸을 둔 대기업 증권회사 과장으로 있던 남편이 회사 지하 체력단련실에서 목을 매어 사망한 사건이었다. 가족과 함께 나를 찾아왔던 배우자는 상담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마치 노려보는 듯했다. 다행히 산재로 인정받았지만, 부인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미숙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과로사와 과로자살로 배우자를 잃은 가족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는지는 돌이켜 본다. 사건을 진행하면서도 열정만 있었지 배려의 감정도, 산재 사건을 다루는 기술도, 인간적 성숙도도 부족했다. 지금도 채워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15년 전을 돌이켜 보면 나는 산재 사건을 잘하기 위한 방법이 너무 간절했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제대로 된 교본도 없는 상태에서 유족의 그 모든 슬픔과 운명에 마주섰다. 제대로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인가 의문이었고, 항상 답답함에 미칠 듯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무사로서의 경험보다는 유족의 목소리라는 점을 십 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산재 노무사의 기술적 노하우가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과로사와 과로자살로, 그리고 산재로 잃은 노동자의 가족의 목소리가 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관과 슬픔과 자책으로 점철된 목소리가 아니라 내 가족의 과로죽음은 세상 탓이라고, 회사 탓이라고, 잘못된 제도 탓이라는 그런 유가족 목소리 말이다.

이 책은 그렇게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이 모여서 만든 목소리이자 외침이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이 주체가 돼 과로사와 과로자살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며 겪었던 슬픔과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이 생생한 목소리로 담겨져 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온전한 명예회복이다. 산재라는 것은 경제적 보상보다 내 가족의 죽음이 본인 탓이 아니라 세상과 회사 그리고 잘못된 제도 탓임을 인정받는 명예회복의 과정이다. 그 과정이 길고 순탄하지 않기에 또다시 절망과 아픔을 겪고 있지만 말이다. 그 길고 긴 과정 속에서 때론 절망하고 때론 정신질환이 걸릴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 과정에서 겪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쓴 글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과로사, 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동료·친구를 위한 안내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장시간 노동과 잘못된 기업문화로 노동자를 과로사와 과로자살로 내몰고 있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과로사와 과로자살 사건에 부딪친 사람들이 보기에 실무적으로도 유용한 책이다. 부검·경찰조사·사망신고·재산조회·연금·보험·상속·긴급복지제도와 같은 사망 이후 각종 행정절차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산재신청을 위한 자료수집(자료수집, 노동시간 확보, 디지털기록물, SNS, 동료 인터뷰), 조사 및 판정 과정(근로복지공단의 조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 승인 및 불승인시 대응)에 대한 내용도 잘 담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일터에서 남겨진 동료들의 급작스런 슬픔에서 보이는 모습들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과 경험이 담겨져 있다. 무엇보다 유족들이 슬픔과 절망을 조금씩 딛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과정과 감정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을 쓰느라 다시금 그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을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함께한 전문가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역할도 적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이 한국 사회에서 과로죽음을 없애는 데 큰 디딤돌이 될 거라 확신한다.

권동희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권동희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결국, 온전한 내 편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자존감은 떨어지고 세상으로 나갈 동력은 잃었다. 그래서 우선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며 활력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언젠가 아이에게 모든 것을 정확하게 설명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아이가 노동에 대해 왜곡된 의식을 갖지 않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숭고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무 일찍 떠나 버린 아빠를 원망하지 않고 감사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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