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4연임은 부도덕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 붕괴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가 4연임을 하느냐 마느냐보다 몇몇 개인이 금융지주사의 인사권을 장악해 막대한 금융사고를 일으키고 사회적 신뢰를 저버려 결과적으로 은행과 고객, 노동자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의 제재도 수긍하지 않고 저항하면서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있는 겁니다.”

최호걸(51) 금융노조 KEB하나은행지부 위원장은 하나금융 지배구조 혁신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호걸 위원장은 지난해 말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 연임 반대와 퇴진 촉구를 시작으로 지속해서 하나금융의 지배구조 혁신을 요구하는 행보를 이어 오고 있다. 최호걸 위원장을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앞 컨테이너 농성장에서 만났다.

김정태 회장 4연임 여부에 쏠린 관심 아쉬워
금융시스템 붕괴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중요

- 김정태 회장의 4연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아쉬운 대목이다. 지부는 지금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아래서는 어떤 인사가 와도 3연임, 4연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다른 금융지주사도 똑같이 회장이 연임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이해가 쉽다. 인물 문제가 아니다. 경제의 혈맥을 담당하는 금융산업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이런 지배구조는 국가 경제에 많은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지배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외부에서는 김정태 회장 연임 여부에만 눈길을 주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더 크고 넓은 이야기를 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지부의 투쟁도 그런 취지다.”

- 금융지주사 지배구조가 어떤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나.

“채용비리와 사모펀드 사태다. 하나은행 채용비리와 사모펀드 사태의 핵심 인사로 함영주 부회장이 지목되고 있다. 채용비리 책임을 묻는 소송이 진행 중이고, 사모펀드 사태로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아 행정소송을 하고 있다. 그는 겸직을 통해 금융지주사와 은행에 모두 발을 걸치고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다. 이렇다 보니 어떤 견제장치도 통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사실상 한 사람이 의사결정을 하게 돼 성과업적주의를 강조하다 보니 내부통제망을 갖췄음에도 사모펀드를 파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 단계별 기구가 있는데.

“사외이사 임명을 사실상 지주회장이 한다. 그렇다 보니 그들도 지주회장에게 포섭돼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다.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한 이사회 견제는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외이사들이 오히려 지주회장의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자기 사람을 다시 사외이사에 앉혀 참호를 구축하는 모양새다. 견제세력이 아니라 지주회장의 조력자인데 기대할 수 있는 바가 크지 않다. 이들이 중심이 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꾸리지만 그 결과가 3연임, 4연임이지 않느냐.

주주총회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시중은행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 국민연금공단이다. 하나금융의 최대주주로 약 1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은행에 대해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받아 투자하는 기관으로서 투자처의 투명성을 검증하고 의견을 내야 하는데 외면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겠다더니 감감무소식이다.”

인사권 쥔 지주사 회장, 견제 받지 않은 절대권력
연임 내달리며 채용비리·사모펀드로 신뢰위기 자초

- 내부 견제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불가능하다. 인사권을 틀어쥔 지주회장이 자회사 경영에 마음대로 개입해도 이사회나 주주총회 어느 곳에서도 견제를 받지 않는다. 제 손으로 뽑은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회장추천위원회를 꾸려 재임에 3연임, 4연임까지 내달린다. 이사이 수익을 내려고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판매를 종용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채용비리를 서슴지 않아도 내부의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 결과는 은행 부실이다.”

- 은행은 어떤 피해를 입고 있나.

“하나은행의 고객 충성도가 하락하고 있다. 쉽게 말해 계좌를 뺀다.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다. 경영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니까 고객이 이탈하고 예금이나 저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실적이 저하하면 다시 성과업적주의를 강화해 현장 노동자에게 실적을 강요한다. 노동강도는 더욱 강해지는 셈이다. 그러다 보면 또다시 사모펀드 같은 금융피해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부가 금융지주사 지배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투쟁하는 이유다.”

- 금융당국이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 지금 금융위원회는 김정태 회장 4연임을 민간기업 일이라 개입이 어렵다고 한다. 말이 안 된다. 김정태 회장의 4연임으로 금융 신뢰가 더욱 하락하고 금융이 공공성을 잃어버리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연임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금융정책을 내고 손질해 공공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금융당국 역할인데 민간기업이라고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함영주·손태승 ‘항명’은 금융시스템 붕괴 전조
인적 다양성 확보해 견제 스위치 작동시켜야

- 금융당국 제재를 거스르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게 금융시스템 붕괴다. 지주 회장이 3·4연임을 하면서 참호가 공고해지고 이를 견제할 수단이 점점 사라지다 보니 이제는 규제당국의 조치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금융기관이 더 이상 금융당국의 정책을 따르지 않고 영리만 추구해 금융 공공성이 완전히 뭉개질 것이라는 우려도 생긴다. 지금 함영주 부회장이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당국의 제재에 저항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모습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부도덕이 아니라 이런 금융시스템 붕괴가 가시화하고 있는 전조다.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 당국의 제재도 거스른다면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대목이다. 지주 회장이 쥔 가장 큰 권력은 인사권인데 이를 무력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드물다. 왜냐하면 이미 제도가 없는 게 아니라 먹히지 않고 있는 단계라서다. 금융당국의 감사나 감독이 있어도 지주회장의 참호를 무너뜨릴 만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금융감독원도 채용비리에 휘말리는 등 스스로 신뢰를 저버리고 있다.”

- 인적 쇄신이 필요하단 말인가.

“다양성이 필요하다. 시민단체에서 공익이사를 얘기하고, 노동계가 노조추천이사제를 말하는 이유다. 지금은 금융당국 사람들이 금융기관으로 낙하산처럼 내려와 서로 얽히고 있다. ‘모피아’라는 멸칭도 있지 않은가. 이런 부분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기존 금융시스템 붕괴에 발을 담갔던 사람들이 아니라 외부 시선에서 내부를 평가하고 할 말을 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심어야 한다. 이게 출발선이라고 본다.”

- 임금·단체교섭도 함께하고 있는데 쟁점은 뭔가.

“차별해소와 공정한 인사시스템 마련이다. 하나은행은 승진 같은 인사를 할 때 임원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분명 인사고과 시스템을 따로 마련하고 있음에도 임원 추천으로 사실상의 승진을 결정하는 구조다 보니 라인에 줄대기가 성행한다.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게 지주 회장에게 쏠린 인사권을 무력화하는 방안이다. 하나은행은 또 입사시 연수성적을 바탕으로 A직렬과 B직렬을 나누는데 B직렬은 A직렬보다 임금 수준이 낮다. 연차가 쌓일수록 격차가 커진다. 창구에서 함께 업무를 하는데 지나친 차이가 나 이를 개선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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