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대상판결 :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21. 2. 17. 선고 2020가합10045 판결

 

대상판결은 노동조합의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된 단체협약안에 대해 노동조합 위원장이 직권조인한 행위는 조합원들의 단결권 또는 노동조합의 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개별 조합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다.

1. 사건 개요 및 쟁점

원고들은 이 사건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고, 피고는 2018년 3월20일부터 2018년 12월3일께까지 이 사건 노조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사건 노조는 2018년 6월12일께부터 이 사건 사용자와 사이에 단체협약 및 임금협정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을 시작하면서 단협 41조 상여금 규정 폐지 여부에 대한 교섭을 진행했다. 2018년 11월27일 조합원 총회에서 이 사건 상여금 규정 폐지안은 부결됐다. 그런데 피고는 2018년 10월29일 이 사건 사용자와 사이에 단협 41조 상여금 규정을 폐지하는 취지의 2018년 정기임금 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노조 조합원 총회의 의결에 반해 직권조인한 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각 조합원들에게 10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노조 내부의결 절차에서 부결된 단협안을 직권조인한 노조 위원장의 행위가 조합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인지 여부 및 그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다.

2. 대상판결 요지

이 사건 노조 규약 17조는 임금·단체협약 체결에 관한 사항을 총회의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피고는 이 사건 노조 대표자로서 총회의 의결을 거쳐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그 의견을 반영해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런데 피고는 이 사건 노조의 조합원 총회에서 이 사건 상여금 규정 폐지안이 부결됐음에도 이에 반해 이 사건 상여금 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의 이 사건 노사합의를 체결했는 바, 이는 원고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원고들이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 위자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 사건 단체협약의 체결 경위, 원고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이 불리하게 변경된 정도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참작하면 피고가 원고들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는 각 30만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3. 대상판결의 의의와 평가

1997년 이전의 구 노동조합법 33조는 노조 대표자에게 ‘단체협약의 체결 기타의 사항에 관해 교섭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해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 권한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1993년 4월27일 선고 91누12257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노조 대표자의 교섭할 권한에는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이 포함되므로 노조 대표자가 사용자와 단체협약 내용을 확인한 후 그 협약안의 가부에 관해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것은 노조 대표자의 협약 체결권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후 1997년에 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9조1항은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그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하여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이후 법원은 노조 규약 등에서 노조의 대표자가 사용자와 합의한 단체협약안의 가부에 관해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에만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면 이는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 권한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한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는 한편, 노조가 조합원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대표자의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업무 수행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위해 규약 등에서 내부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등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 권한 행사를 절차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판례는 노조 대표자가 조합원 총회의 인준 등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권으로 합의하더라도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은 부인될 수 없다고 새기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조의 내부통제 절차를 위반한 대표자에게 일정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으로 판시하고 있다.

먼저 대법원 2014. 4. 24. 선고 2010다24534 판결은 노조가 규약 등을 통해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 권한 행사를 절차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허용되고 노조 대표자는 단체협약을 체결함에 있어 조합원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노조 대표자는 노조의 위임에 따라 노조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부담할 뿐이고, 개별 조합원에 대해서까지 위임관계에 따른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개별 조합원들에 대한 선관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1) 그러나 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6다205958 판결은 노조의 대표자가 조합원들의 의사를 결집·반영하기 위해 마련한 내부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아니한 채 조합원의 중요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관해 만연히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그 단체협약의 효력이 조합원들에게 미치게 되면, 이러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호되는 조합원의 단결권 또는 노조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조합원들에게 각 3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상판결은 위 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6다205958 판결의 취지를 재확인하면서 노조의 내부통제 절차를 위반해 직권조인한 대표자에 대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해 노조의 민주적 운영과 절차적 정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상판결에서 피고는 전체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부득이하게 직권조인했고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에게 이익을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는 피고의 직권조인으로 인해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이 불이익하게 변경됐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았고, 피고가 주장하는 사유만으로 조합원 총회의 결의에 반해 단체협약을 체결한 피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즉, 대상판결은 부결된 단체협약안에 대한 피고의 직권조인으로 인해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이 불리하게 변경됐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했고, 조합원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이 불리하게 변경된 정도는 손해배상책임의 범위에서 고려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앞서 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6다205958 판결은 노조 대표자가 규약에 정해진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직권조인한 사례임에 비해, 대상판결은 피고가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규약에 정해진 내부 절차에 따라 조합원 총회를 개최한 결과 부결됐고, 그에 따라 피고를 비롯한 집행부 간부들이 사퇴의사를 표시했으며 대의원회의는 집행부의 사퇴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설 때까지 사측과 교섭을 중단할 것을 의결했음에도 만연히 직권조인한 사례로, 그 행위의 질이 더 나쁘고 그로 인해 조합원들이 더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 명백함에도 이를 위자료 금액 산정에 반영하지 않은 한계가 있다.

한편 서울동부지법 2018. 11. 26. 선고 2018고단1896 판결은 노조 대표자가 노조 규약에서 정한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합의를 한 행위는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므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4. 결론

법원은 노조의 규약에서 단체협약 체결에 관한 사항을 조합원 총회의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어 대표자로 하여금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정하고 있는 경우에, 노조 대표자가 총회의 의결을 통해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거나 나아가 총회가 부결됐음에도 조합원의 총의를 무시하고 직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개별 조합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해, 개별 조합원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함은 물론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법원은 그동안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에 막강한 힘을 부여하면서도 이를 견제할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통제 수단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노조 내부관계에서 이를 해결하도록 그 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조법 29조1항의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이 대표자 자신을 위한 권리가 아니라 조합원 전체를 위한 권한임을 상기한다면 단지 대표자가 직권조인만 하면 그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는 법원의 근본적인 태도는 여전히 수긍하기 어렵다.

 

<각주>

1) 원고들은 위 판결의 파기환송심에서 피고에 대한 위자료 청구의 청구원인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선택적으로 추가해 각 20만원씩의 손해배상액을 인정받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