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밥 꾸러미 싣고 내달려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저기 섰다. 현수막 하나에 아홉 명씩, 두 모둠이었다. 저마다 할 말이 있어, 속도 경쟁을 멈추라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던 기자회견은 점심시간 즈음까지 이어졌다. 그 뒤편 패스트푸드 가게로 헬멧 쓴 라이더들이 줄줄이 들어갔다. 빠르게 조리한 음식을 들고 잰걸음으로 문을 나왔다. 부르릉 내달려 멀어져 갔다. 한 콜, 두 콜, 그게 다 돈인데 밥벌이 잠시 멈추고 저기 모인 사람들은 번쩍번쩍 수시로 바뀌는 노동조건을 꼬집었다. 인공지능이 일감을 주면, 그것이 알려 준 일직선 길을 따라 건물을 뚫고, 물길을 건너 달려야 했던 저들은 넘어져 다쳐도 일어나 배달시간을 맞춰야 했다. 폭설과 폭우와 폭언을 견뎌야 했다. 첨단의 알고리즘엔 사람 변수가 누락됐다. 더 빠른 배달을 위한 계산에 다만 능했다. 위험이 널렸다. 다 제 몫이었다. 바꿔 보자고, 모래알 같던 사람들이 유니온 이름 걸고 뭉쳤다. 오토바이 열쇠엔 ‘뭉치면 바뀝니다’라고 새긴 고리를 걸었다. 그것은 얼핏 먼 꿈같은 말이었지만 성과가 이미 적잖다. 미국 증시 상장으로 대박의 꿈을 이룬 어느 회사는 이를 두고 ‘위험요소’라 칭했는데, 정작 위험한 배달 일을 시키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회사가 우리 사회의 진짜 위험요소라고 유니온의 위원장은 말했다. 마이크 잡기를 부끄러워했던 조합원들은 기자회견이 끝나고도 떠날 줄을 몰랐다. 서로 껴안아 인사하고 묵힌 말을 나누느라 오래 머물렀다. 저기 가림막 벽 너머 20억쯤 한다는 아파트 단지를 배경 삼아 실루엣으로 섰다. 다치지 말자고 서로 당부했다. ‘모든 상황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고 배달통 뒤에 손글씨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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