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태 ㈔함께하는 아시아생명연대 대표(목사)

1975년 발표된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당시 박정희의 군부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민중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군부정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혹한 탄압을 가하는 것으로 민주주의 싹을 짓밟으려 했으나 들불처럼 번지는 민주화 열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작품처럼 끊임없이 민주화를 갈망하는 지식인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이는 마치 어두운 흑암 속 한 줄기 빛으로 나타나 민주주의라는 꽃의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타는 목마름’은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다.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신군부 집권하에서도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중들에게 가요로 불렸으며,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라는 성과로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3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 ‘타는 목마름’은 이제 다른 공간에서 다른 민족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바로 미얀마다.

미얀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1962년 3월 네 윈 장군의 군사 쿠데타를 기점으로 오랜 기간 군부정권이 통치하게 된다.

미얀마에서는 1988년부터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군부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해 수천 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낳았다. 이를 ‘8888 민중항쟁’이라 부른다. 이후 네 윈의 사임으로 미얀마에 드디어 민주화가 이뤄지는 것 같았으나 이어지는 군부의 친위 쿠데타로 끝내 ‘양곤의 봄’은 찾아오지 않았다.

1990년 5월 그토록 고대했던 총선이 열려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가 압승을 거두게 돼 마침내 민주화가 이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군부정권은 선거 결과를 부정함으로써 정권을 지속하게 되고 이에 또다시 민중들의 ‘타는 목마름’은 더욱 커졌다.

시간이 흘러 2007년 8월 군부정권의 유가인상 정책으로 민중의 삶이 더욱 피폐해져 가는 가운데, 승려들을 중심으로 또다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촉발되게 된다. 군부는 ‘8888 민중항쟁’ 때와 같이 총을 동원한 폭력진압으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참사를 낳았다. 이를 ‘샤프론 혁명’이라 부른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미얀마였기에 결국 군부는 2003년 민주화 7단계 로드맵을 기점으로 2008년 신헌법 채택, 2010년 11월 총선 실시 및 의회 구성으로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를 받아들이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어진 2015년 11월 평화적으로 실시된 총선에서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NLD가 압승을 하게 됐고 2016년 3월 NLD 정부가 출범했다. 미얀마는 그토록 기다렸던 민주화가 이뤄지게 됐다. 그러나 이는 안타깝게도 반쪽짜리 민주화였다.

총선에서 압승을 했는데도 2008년 군부정권에서 제정한 신헌법에 따라 상·하원 의석의 25%가 군부에 할당됐고 국방부·내무부·국경경비대 등 주요 3개 부처 장관 지명권도 군부에 주어졌다. 이는 군부정권과의 동거인 동시에 훗날 다가올 쿠데타의 불씨가 되고 만다.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NLD는 다시금 압승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군부는 부정선거라는 의혹을 빌미로 지난달 1일 다시금 아웅 산 수치를 감금하는 것으로 전격적인 쿠데타를 단행한다.

다시금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는 이 순간 민중은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2월6일부터 미얀마 전역에서 시작했다. 같은달 7일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10만여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2007년 샤프론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이다.

2월22일에는 주요 업종 종사자들이 자진 파업을 택하며 시위에 참여하는 ‘22222 시위’가 전개되었다. ‘22222 시위’는 1988년 8월 8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였던 ‘8888 민주화 운동’에서 유래한 용어다. 그럼에도 군부는 현재까지 쿠데타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항의하는 국민에게 총탄을 발사하는 등 끔찍하리만큼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을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얀마의 민주화역사는 놀라울 만큼 닮았다. 우리나라에 1961년 박정희의 군부쿠데타와 1987년 6월 항쟁이 있었다면 미얀마는 1962년 네 윈의 군부 쿠데타와 1988년 8888 민주화 운동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바로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 여부’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문민정부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민주화가 이뤄졌으며 ‘하나회 척결’로 남아 있는 군부독재 세력을 청산했다.

반면 현재 미얀마는 오늘날까지도 못다 핀 꽃,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 미얀마 젊은이들의 팔뚝에는 자신의 혈액형과 마지막 메시지가 적혀 있다. 젊은이들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몸을 던지고 있다.

‘타는 목마름’은 이제는 미얀마에서 이어지고 있다. 군화에 짓밟히고 총칼에 수많은 피를 흘렸던 과거 우리나라 민중항쟁의 모습이 오늘날 미얀마에서 재현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민주화를 위한 열망과 정신은 분명 같을 것이다.

현재 미얀마 민중은 과거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이는 결코 다른 나라의, 우리와 상관없는 사건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이가 군부정권의 폭력진압으로 피를 흘리고 있다. 미얀마 민중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세계 각국에 민주화를 위해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동일한 기억을 가진 우리나라는 이를 결코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그들과 연대해 함께 싸워야 할 것이다. ‘타는 목마름’은 다른 공간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 미얀마 민주화투쟁기금을 외국인노동상담소(대구은행 050-08-025230-4)로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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