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얼마 전 일이다. 6411을 주소로 하는 인터넷 도메인을 확보하려고 했다. 지난해에 생각해 뒀던 것인데, 어영부영 미뤄 둔 일이다.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확인했는데, 아뿔싸 벌써 누군가가 도메인을 확보해 버렸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도메인 확장자는 이미 다 선점됐다. 확인해 보니 주소를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고 있어 판매용으로 확보해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아 있는 두 개의 도메인은 확장자명이 재단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듯했으나, 그마저도 없어지면 안 되겠기에 이후 사업을 위해 확보해 뒀다.

묘한 감정이 일었다. 한편으로는 미리 도메인을 확보해 놓지 못한 게으름에 대한 반성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6411이라는 상징 숫자의 중요성을 미리 알아차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약간의 기쁨도 있었다. 물론 서운한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부디 좋은 의도로 확보해 뒀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6411이 중요한 상징이 된 것은 언론 등을 통해서 6411 투명노동자들의 현실과 6411 정신에 대한 보도와 관심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 관심에 감사를 드린다. 그간 노회찬재단이 진행한 중요한 기획 사업은 6411 정신을 매개로 해 이뤄졌다. 그리고 그 기조는 올해도 변함이 없다.

노회찬재단에서 스마트 스토어(온라인 가게)를 개설했는데, 그 스토어의 이름을 6411희망가게로 했다. 재단에서 제작하는 굿즈를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한 가게다. 굿즈를 다르게 표현하면 좋으련만, 아직은 마땅한 대체어를 마련하지 못해 그대로 쓰고 있다. 재단에서 만든 탁상달력을 제외하면 6411희망가게에서 제일 먼저 선을 보인 품목은 사회연대굿즈의 이름을 달고 있다. 추모나 기념 굿즈가 아니라 사회연대굿즈를 제일 먼저 내놓은 것은 굿즈 하나를 통해서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가치가 있고, 또 그것이 6411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재단의 사명에도 맞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사회연대굿즈는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요즈음 아파트 경비노동은 단순히 경비만 서는 게 아니다. 재활용품 정리, 주차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한다. 밤일과 새벽일도 많다. 이를 염두에 두고 품목을 구했다. 모자챙에 달 수 있는 LED 랜턴, 소리를 듣는 데 불편함이 없는 청음 귀마개, 보온 효과가 있으면서도 물건을 잡기 편하게 마찰력이 높은 장갑이다. 이 선물을 후원회원들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에게 선물을 해 마음을 나누자는 기획이었다.

사회연대굿즈는 자신에게 전달되는 물건이 아니다. 나의 돈으로 사지만, 물건은 다른 이에게 전달된다. 나에게 남는 것은 나눔의 정이고 연대의 기쁨이다. 받는 이에게는 선물이 가져다주는 즐거움도 있지만,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마음이 더 큰 행복으로 와 닿을 것이다. 투쟁 사업장에 연대의 정과 물품을 전달할 때 우리가 나누는 기쁨이다. 누구도 이를 하찮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또는 직접 만나기는 어려워도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일은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따로 계기를 만들지 않으면 그저 스쳐가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역시 6411 투명노동자다.

앞으로 노회찬재단에서는 사회연대굿즈를 연속해서 제작할 계획이다. 마음으로는 매달 특정한 노동자 집단을 염두에 두고 품목을 만들고 싶지만 아직 그 정도의 작업 여력은 없다. 하지만 매년 작업을 축적하다 보면, 특정한 날이나 달에 그 노동의 가치를 함께 새겨보는 일도 가능하리라 본다. 몇 월에는 돌봄노동, 몇 월에는 배달노동, 또 몇 월에는 봉제노동 등으로 노동의 가치를 함께 존중하며 그 노동이 사회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재단의 이 기획은 노동운동에서 실행되고 있는 다른 큰 기획을 대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획이 가지는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고유한 의미가 다른 기획들과 합주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이뤄 냈으면 한다. 이는 비를 함께 맞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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