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임금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 정책은 코로나19 이후 세계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하다’는 부제를 단 책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는 이런 질문에 거침없이 답한다. “임금에는 공정성이 없다”고 단언하는 저자, 한지원은 “동일생산성, 동일노동, 동일제도는 개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임금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상상 속의 4차 산업혁명 시대 구빈법”일 뿐이라며 “복지이론에도 미달한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도발적일 수도 있는 이런 주장은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인 저자가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을 토대로 찾은 답들이다.

마르크스 <자본>의 눈으로 본 오늘의 경제

카를 마르크스가 쓴 <자본>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온갖 해설서가 출판될 정도로 매력적이면서 어려운 책이다. 지금껏 자본주의의 모순을 마르크스만큼 정확하고 분명하게 해석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금융위기나 코로나19같이 자본주의 체제에 빨간불이 켜질 때마다 마르크스가 소환된다.

그런데 이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해설하는 책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이 다루는 대상은 오늘의 경제다.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을 분석틀로 삼아 2021년의 자본주의를 파헤친다.

마르크스의 <자본>처럼 이 책도 상품과 화폐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이 이야기하는 상품과 화폐는 2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았던 마르크스의 <자본>과는 전혀 다르다. 4차 산업혁명이 과연 오는 것인지, 디지털 경제가 성장을 이끌 수 있을지, 비트코인은 과연 새로운 화폐인지 짚는다. ‘이윤과 임금’을 다룬 2부에서는 직장갑질은 왜 사라지지 않는지, 과연 공정한 임금은 존재하는지, 귀족노조라는 비난이 왜 나왔는지 분석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고전경제학을 비판대상으로 삼았다면 이 책은 현대 경제이론의 허점과 공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소득(임금)주도성장론이 그렇다. 저자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임금격차 해소 방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힘을 집중했지만 이런 정책들은 비정규직이 왜,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가 없다고 열변을 토하던 연구자들 중에 누구 하나 이런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며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노동시장의 정의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정규직화 자체가 무용지물인-재벌도 거들떠보지 않는 경제영역에 있는- 절대다수 비정규직 상태에 대해 침묵한다”고 꼬집는다.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은 임금을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윤리로 다시 정의하는 것이라고 제언한다.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이 책은 오늘날의 경제 상태가 저성장이 아니라 성장엔진 자체가 꺼진 상태로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르헨티나처럼 반복해서 국가 부도가 나거나 일본처럼 저성장 덫에서 수십 년째 허우적거리는 상태다.

자본주의가 멈추는 이유는 마르크스가 이미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안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업들이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기술혁신에 집중하지만 경쟁적인 기술현신이 결과적으로 전체 기업의 자본투자 수익률을 낮추는 ‘기술 진보의 자본편향’으로 설명한다.

고장 난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계는 어떻게 가능할까. 자본주의가 멈춰 선 곳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것, 시장의 화폐를 통해서만 연결되는 사회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저자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효율적이고 공정한 분배를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관습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단시간에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금처럼 만들어지기까지 짧게 잡아도 200년이 넘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