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오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가 위치한 여의도 CCMM빌딩 앞에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직영화를 위한 파업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의 파업이 4일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11개 도급업체 7개 센터에서 흩어져 일하던 900여명의 상담노동자 목소리는 원청의 직접고용 요구로 모아졌다. 파업을 중단하는 조건은 하나다. 원청과의 대화. 560명의 상담노동자는 면담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손편지를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공단은 정규직 노동자와 익명의 취업준비생 뒤로 숨은 채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제2 인천국제공항사태’라는 딱지가 붙여지면서 상담사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이유에는 관심이 쏠리지 않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상담사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껍데기뿐인 도급업체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 결정을 받지 않고선 노동자들이 파업할 수 없다. 파업의 시작은 교섭 결렬이란 의미다. 1천600여명의 상담노동자 중 절반이 넘는 940여명이 가입한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지부장 김숙영)는 11개 도급업체와 개별 교섭을 진행하며 생활임금 지급을 요구했다. 인건비에 따라 도급액을 책정받은 도급업체는 권한이 없었고 교섭은 지난달 모두 결렬됐다.

“13년째 일하는 동안 도급업체가 네 번 바뀌었어요. 그런데 일하는 자리, 책상까지 같아요. 상담사들은 간판만 바꿔 달았다고 해요. 업체는 간판에 스티커만 바꿔 붙여요.”

김숙영 지부장(51·사진)이 말했다. 도급계약은 2년 주기로 갱신된다. 원청이 도급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상담노동자들은 기존 업체와 계약을 해지한 뒤 새로운 업체와 새로운 근로계약을 맺는다.

16년째 상담사로 일한 전여정 지부 서울지회장은 “도급업체 정규직이 아니라 2년 단위 계약직”이라며 “도급업체의 정규직이었다면 공단이 도급업체와 계약을 해지할 때 우리도 함께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연차 사용도, 감염병 예방도 2등 시민 대우”

도급업체에 소속돼 있다는 이유로 ‘2등 시민’이 된 상담노동자의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처우는 당연시됐다. 지부에 따르면 870명의 상담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평균 임금은 세전 182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급여는 매일 똑같고, 연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해요. 건강보험료 납부로 상담이 몰리는 매달 26일부터 익월 11일까지 연차를 못 썼어요. 월요일도 상담이 밀린다고 못 썼고요.”

전여정 지회장이 토로했다. 전 지회장은 “회사가 연차를 한 달 전에 정하게 했는데 상담사들 사이에서는 ‘죽는 것도 날 받아놓고 죽으라는 것이냐’는 우스개 소리도 나왔다”며 “당일 연차를 쓰면 평가점수가 깎여 성과급을 받지 못할 확률이 커졌다”고 전했다.

원·하청 구조에서는 원청은 도급업체 간 경쟁을, 도급업체는 상담노동자 끼리의 경쟁을 부추겨 노동자의 상황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전 지회장은 2018년 자유롭게 연차를 쓰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기도 했지만, 답변은 언제나 그렇듯 “원청은 도급업체의 일에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고 한다. 노조가 생긴 뒤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코로나19 위기는 상담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3월 서울시 구로구 A보험사에서 집단감염으로 닭장 같은 콜센터 사업장이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의 감염예방 대처는 항상 한발 늦었다. 권한 없는 도급업체의 한계였다. 김숙영 지부장은 “도급업체가 비말을 막기 위한 가림막을 4월 정면에만 쳐줘서 옆에 가림막이 없음을 문제제기하자, 9월에야 설치가 됐다”고 말했다.

상담노동자들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 느끼기도 한다.

“교섭을 하려고 갔는데 사측 교섭위원이 그러는 거예요. 2~3시간 교섭하러 와서 덴털마스크를 쓰고 오냐고, 바꿔 끼라고요. 우리는 하루종일 다닥다닥 붙어 덴털마스크 끼고 상담하는데. 우리는 사람 취급을 못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숙영 지부장은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렸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공단은 사기업이 아니지 않나”

기준도 잣대도 모호한 공정성 논란에 상담사들은 속이 답답하다. 공정성 논란은 흔히 입직경로를 중심으로 번져 가는데, 자신이 거머쥔 사회적 위치가 노력의 크기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전여정 지회장은 ‘저주받은 93학번’ 중 한 명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학을 졸업했고 한 병원에 정규직 직원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병원이 인력을 구조조정하면서 6개월 만에 해고됐다. 이후 입사한 벤처기업도 휘청거렸고 제대로 된 경력을 쌓을 기회를 놓쳤다.

“전화방이라는 이름으로 공단이 직접 운영하다가 도급을 준 거잖아요. 원래 건강보험 업무인 거고요. 공단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나요?”

가장 큰 문제는 공단이 공정성 논란 속에 숨어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숙영 지부장은 “국민연금공단같은 경우는 공공성을 강화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고객센터 직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직영 전환을 결정했다”며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은 사람들(정규직 혹은 익명의 취업준비생)이 반대하니 못한다고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지부장은 “사용자로서 (정규)직원의 의견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며 “사기업이 아니니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기관 콜센터는 정규직 전환, 왜 여기만? ”

공단은 2019년 10월 고객센터 민간위탁 사무논의 협의기구를 꾸렸다. 하지만 같은달 첫 회의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의를 열지 않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콜센터 업무는 명확하게 공단의 고유업무”라며 “그간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아웃소싱한 것이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것은) 비용절감·유연성, 내부 정서적 반감 말고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콜센터는 상시·지속업무이고 다수의 중앙부처·지방정부·공공기관이 콜센터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며 “정부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3단계를 이야기할 때 생활폐기물·전산 업무·콜센터와 같은 전국에 중앙적이고 통일적인 업무는 (전환 방향을) 같이 모색을 한다고 해 놓고서는 2년 동안 제대로 된 방향이 못 나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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